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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아나 Aug 23. 2023

아니 에르노를 읽다

단순한 열정, 부끄러움, 이브토로 돌아가다

 

이미 다른 동기들은 다들 읽어본 책. 아니 에르노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책이다. 나는 <부끄러움>을 먼저 읽고 읽어 이 책이 정말 짧게 느껴졌다. 바로 전에 읽었던 모니카 마론의 <슬픈 짐승>과 비슷한 소재였지만 글은 달랐다. <슬픈 짐승> 불륜 속에 숨어든 독일의 사회상을 들여다본 것이었다면 <단순한 열정>은 한 여자의 지독한 사랑을 슬프게 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의 연락을 기다리고 다른 여자와의 일상을 상상하며 자신의 정신을 갉아먹고 피폐해진 마음을 들여다보질 못하는 것은 똑같구나 싶었고.


- 어떻게 해보려는 생각으로 내게 다가와 말을 거는 남자들이 어이없게 느껴질 정도였다. 내가 한 남자만을 생각하느라 얼이 빠져 있는 게 그들에겐 보이지 않았단 말인가?


헤어지고 난 후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환영한다. 굳이 누군가가 곁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기만이고 어리석은 짓 아닐까? 물론 상대가 작정하고 속인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위로를 해주고 싶다. 


- 날이 밝아도 일어나고 싶지가 않았다. 아무런 계획이 없는 무의미한 하루가 내 앞에 버티고 있었다. 시간은 더 이상 나를 의미 있는 곳으로 이끌어주지 못했다. 단지 나를 늙게 할 뿐이었다.


지난 <슬픈 짐승> 독서토론 모임에서 내 차례가 되어 발제문을 발표하고 난 후 동기 한 명이 글에서 분노가 보인다고. 아무래도 속내가 글 속에 드러난 모양이다. 그래도 이번 불륜이야기는 워낙 절절해서 그 분노를 조금은 가라앉히며 읽었다. 여주인공의 신세가 조금은 서글퍼지기도 했고. 아마 이런 연유로 글을 쓰는 그녀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되어서 그런 걸 지도 모르겠다.


- 글에는 자신이 남겨놓고자 하는 것만 남는 법이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글을 쓴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읽힐지도 모른다는 고통을 연장시키는 것과 같다. 하지만 내가 글을 써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는 한 그런 건 개의치 않는다. 


이 책의 절반은 소설, 절반은 해설이다. 이 해설 부분에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소개하는데 남성 중심적 시간에서도 각광을 받은 그녀의 작품이 살아남아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읽히고 소장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이 소설을 모태로 쓴 <포옹>을 읽어봐야겠다.


La honte [수치]로 옮겨지기도.

아니 에르노 작품 중 가장 먼저 읽은 책. 표지에 담긴 여성이 너무 예뻐서 구입했던 것 같다. 아직도 그녀가 작가인지 아닌지는 잘......

다른 작품에서도 소개가 된 이 작품은 '수치'라는 제목으로 옮겨지기도 했다. 


- 글, 모든 글은 가장 극적인 것을 포함한 어떤 행위도 정상적인 것처럼 만들어버리나 보다....... 중략..... 이를 묘사하려고 사용한 단어들이 낯설고 무례하게까지 느껴진다. 이것은 남들을 위한 하나의 장면이 되었다.


작가이기 때문인지 글을 쓰는 행위에 대한 묘사가 끊임없이 등장한다. 그래서 내게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세 권의 책 중 가장 많이.


- 활자화된 글로 복원하고픈 욕구, 다른 어떤 것도 시도할 수 없다는 좌절감 등의 징후로 미루어보아 내가 이렇게 책을 쓰고 있다는 것은 단숨에 모든 것을 노출하는 위험을 무릅썼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날것의 사실들일뿐, 노출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것을 글로 써서 표현하는 것, 활자화하는 것은 때론 편할 때가 있다. 대화 상대의 목소리, 표정을 보지 않고 오로지 내가 온전히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하고 싶을 때는 글을 써서 전한다. 단, 카톡 같은 메시지 말고 손 편지 같은 걸로. 


이 책을 읽으면서 지금 내 상황이 그래서인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 가톨릭요소가 많이 내포되어 있어 약간의 친근감을 가지며 작가의 감정에 동화되어 진중하게 읽었다. 반갑기도 하고.

홍대를 잠시 나갈 일이 있어 이 책을 들고 경의선을 탔다. 많지 않은 사람들 틈에 자리가 나 앉아서 이 책을 읽었다. 무겁지 않은 사이즈의 책이라 부담 없이.


굉장히 심플하게 쓴 문장인데 한 문장, 한 문장이 내게는 익숙하고도 날카롭게 다가왔다. 이 작가의 다른 책파기, 계속될 듯하다.


세 번째 작품 '이브토로 돌아가다'는 이브토 시청으로부터 도서관에서 강연해 달라고 요청을 받은 후 이브토에 다녀간 내용을 실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이브토는 어떤 곳일까? 한 번쯤은 가보고 싶어 진다.

책을 읽다 보면 '시내에 간다'라는 표현을 썼다. 서울이 아닌 지방에 살았던 나는 '시내'라는 단어에 익숙하다. 그녀가 간 이곳 역시 그런 범주의 도시가 아닐까 싶다. 


- 도심과 동네 사이의 공간적 분리를 넘어선 사회적 성격의 또 다른 분리를 환기하려고 합니다. 그러한 성격의 분리가 반드시 지형적 분리와 뒤섞이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중략>... 동네를 아우르는 반경 내에서 세계를 경험했는데, 그 경험이 일어나 특정 영토를 특징지었던 것은 바로 오늘날 사회적 통합이라고 명명되는 것입니다. 


작가의 가난한 어린 시절 이야기는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락스희석수 냄새가 부끄러웠다는 그녀. 가난은 커서도 잊지 못할 기억이다. 나도 어릴 때 친구들 집에 가면 책장 앞에 서서 읽을 책이 있을까 훑어본 적이 있다. 친구가 라면을 끓여주면 나는 친구의 공포동화를 읽으며 기다렸다. 라면 받침으로 쓰던 것도 책이요, 탁자 위에 놓여있던 물건들도 책이었다. 누군가의 집에 갔을 때 장서가 꽂혀있다면 나는 그와 친하게 지내기로 마음먹었다. 


- 책은 아주 일찍부터 제 상상력의 영토, 제가 알지 못하는 이야기와 세계에 대한 투영의 영토였습니다. 제게 현실과 진실은 책 속에, 문학 안에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생겨났지요.


나도 물론.


마지막에 마르그리트 코르니에의 발문에서 이르기를, 이브토는 작가의 가족의 행복, 꿈, 끝없는 독서의 장소이자 또한 비밀과 수모의 장소, 한마디로 인격의 구축과 작가의 소명이 일어나는 장소라 한다. 내게도 그러한 장소가 있다. 비밀의 장소, 내가 힘에 부칠 때 찾아가는 곳, 기도를 하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 아무도 모르는 성전에서 미사를 드리면 마음은 이미 정갈해진 느낌이다.


이 책을 읽으면 작가의 다른 모든 책들을 읽어보고 싶다. 그녀의 삶 속으로 들어가 함께 주위를 돌아보고 싶다. 그녀가 속해 있는 모든 관계에 함께 울고 웃고 수다를 떨고 싶다. 읽지 않고는 쓸 수 없다는 그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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