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4년 동안 스타트업에서 마케터로 재직했습니다. 사실 말만 마케터였지 오픈 멤버였기 때문에 올라운더로 일했습니다. PM뿐만 아니라 CS까지 진짜 안 해본 일이 없습니다. 워낙 팀 인원이 적어 모두가 멀티플레이어로 일할 수밖에 없었지만, 한 서비스를 만들고 운영하는 일에 크게 재미를 느꼈고, 성공을 바라며 20대 후반을 바쳤습니다. 하지만, 서비스 론칭 뒤 코로나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터지며 사업은 지지부진했습니다. 새로운 시도를 거듭했으나 성과는 미미했고, 대내외적으로 회사 내 인원들도 크게 바뀌었습니다. 결국 오픈 멤버는 저 혼자 남게 되었죠. 사업의 핵심 담당자가 되자 부담감은 배로 커졌습니다. 번아웃이 오고, 공황 증세까지 보일 정도로 부담감을 못 이긴 저는 퇴사했고, 5개월 뒤 서비스는 막을 내렸습니다.
퇴사 후 반년 동안 쉬며, '내가 조금 더 노력했더라면 좋은 성과가 있지 않았을까? 다른 방향으로 나갔다면 더 잘되지 않았을까?' 자책하기도 했습니다. 실패한 서비스의 담당자라는 꼬리표를 스스로 달고 다녔죠. 하지만 이제 흔한 말을 믿어보기로 했습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것을. 괴로웠던 만큼 분명 성장했을 테니까요. 스타트업에서 한 서비스의 사이클을 경험하며 느꼈던 소회를 이제 남겨보려 합니다.
1. 시장과 타겟에 대한 명확한 이해는 필수
가장 크게 아쉬움으로 남았던 점은 업계와 타겟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는 점입니다. 기본이지만, 가장 어려웠어요.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채 무작정 뛰어들었던 것이 실패의 원인 아닐까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플랫폼 비즈니스를 하고 있던 시절, 저희 또한 당연히 중개 플랫폼을 만드는데만 애썼습니다. 플랫폼만 만들면 당연히 고객이 모여들거라 생각했죠. 참 막연한 생각이었습니다. 시장과 고객 니즈는 그게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특수 업종이었던 만큼 시장과 고객을 파악하는 데 더 시간을 쏟았더라면 조금은 다른 서비스가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2. 사공이 많으면 배가 안드로메다로 간다
스타트업의 장점은 모두가 평등하게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의사결정 과정이 빠른만큼 여러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고, 위기 상황에도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공을 아우를 수 있는 체계가 없다면 배는 안드로메다로 갑니다. 초창기 비즈니스 모델을 설계하고, 브랜드 방향성을 수립할 때 매주 수없이 회의를 진행했습니다. 더 좋은 방향성을 찾기 위한 회의였지만, 모두 각자의 포지션에서 혹은 각자의 이해관계에서만 이야기하다 보니 프로젝트가 엎어지는 일이 많았습니다. 일정은 다가오는 데 결론이 지어지지 않으니 답답했죠. 결국 '일단 서비스를 론칭하자!'는 데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하면서 급하게 프로젝트가 진행되었습니다. 의사결정체계와 이를 현명하게 조율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필요하다는 것을 가슴 깊이 느꼈습니다.
3. 당장의 성과에만 집착하지 말 것
눈앞에 보이는 성과에만 집착하지 말고, 조금 더 큰 그림을 보며 단계적으로 실행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성과가 지지부진한데도 손 놓고 있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당연히 이것저것 테스트해보며 최적화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경계해야 할 것은 조급함입니다. 조급함에 쫓기다 보면 읽어야 할 인사이트를 놓치기 쉽습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특히나 마케터는 데이터에 대한 인사이트를 읽는 게 가장 중요한 데 말입니다. 앞으로는 명확한 계획과 기간을 두고 치밀하게 작업하겠다고 스스로 다짐했습니다.
4. 모두 문서화시키자
비록 서비스는 실패했지만, 제가 가장 잘했다고 느끼는 것은 모두 문서화시켰다는 것입니다. 회의가 잦고, 구두로 진행되는 상황도 있다 보니 휘발되는 이야기가 꽤 많았습니다. 업무 진행의 불편함을 최소화하고자 작은 업무라도 모두 문서화시켰죠. 할 일 많은 스타트업에서 효율적으로 일하는 게 가장 중요했으니까요. 요즘 지난 문서를 열어보며 잊고 있던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하고, 지난날의 나는 참 열정 가득했구나를 느낍니다.
실패한 서비스의 담당자라고 인정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하네요. 안 그래도 요즘 이직 준비를 하며, 지난 4년을 돌아보고 있어요. 목표를 향해 달려 나가던 열정과 책임감 있는 제가 보이더군요. 실패라는 경험을 발판 삼아 새 도약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채용 담당자분들 저를 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