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공을 나는 매는 찬란하여라(르귄, 어스시의 마법사로부터)
오직 침묵 속에 말이.
오직 어둠 속에 빛이.
오직 죽음 속에 삶이 있나니.
창공을 나는 매는 찬란하여라.
— <에아의 창조>
어슐러 K. 르귄 작품 [[어스시의 마법사]] 속 등장하는 시입니다.
작품 세계관 안에서 예사로운 시가 아니라 신성하고 예언적인 시입니다.
그리고 사실은 르귄 작가의 상상력과 창조력의 산물이지요. 그 속에서
어스시 세계를 창조한 에아를 기리는 노래는
옛일을 이야기하는 동시에 미래를 이야기합니다.
역사가 예언이고,
예언은 현상들의 표면이 아니라 현상을 일으키는 본질을 노래하는 것이기에
그 “참 이름”들로 구성된 노래는
단순히 과거 혹은 미래에 속하지 않고 영원에 속합니다. 영원에서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어스시 사람들은 믿습니다.
오직 침묵 속에 말이.
오직 어둠 속에 빛이.
오직 죽음 속에 삶이 있나니. 하고.
그건 그들이 그렇게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믿습니다’라고 할 때, 그래서 이렇게 바꾸어도 됩니다.
그들이 ‘듣습니다’라고.
그리고 그렇게 듣고, 믿으니
그들은 행합니다.
에아가 창조한 세계에서 에아의 창조 시를 들은 이는
이를 듣고 믿어 행한 이는
창공을 나는 매는 찬란하여라.
— 창공을 납니다.
그리고 이처럼 창공을 나는 매는
찬란합니다.
땅에서는 몰라도
땅바다, 바다의 세계 어스시(Earthsea)에서
이동하는 자, 자유를 누리는 자, 이 세계의 이쪽과 저쪽을 오가는 자는
단순히 달리는 자가 아니라 ‘항해자’이고
가장 경이로운 항해자는 ‘나는 자’, ‘매’입니다.
다시, 무엇을 듣는가 우리도 들어봅시다.
오직 침묵 속에 말이.
오직 어둠 속에 빛이.
오직 죽음 속에 삶이 있나니.
창공을 나는 매는 찬란하여라.
오직 침묵 속에 말이 있다는 것은
침묵 속에 말뿐 다른 게 없다, 말만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말이 오직 침묵 속에만 있다는 말입니다.
이 둘이 결합되어서만 하나의 진술이 탄생합니다.
오직 어둠 속에 빛이 있다는 말도
어둠 속에 빛이 있다는 진술인 동시에
빛이, 어둠 속에만 오직 있다는 진술이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삶이 죽음 속에 오직 있습니다.
그러하니
“창공을 나는 매”는 “찬란”합니다.
우리 세계도 그렇습니다.
여기는 어스시가 아니라 어스(Earth)입니다만, 이 땅에 태어나 산다는 것은
충분한 어둠과
충분한 침묵 안에서라면
역설적으로 창공을 날듯이
찬란한 삶으로 이어집니다.
보기 바랍니다.
둘러봐도 보이지 않는다면
깊이 들여다보고
그러고도 볼 수 없다면
하십시오.
하면 볼 것도 없지 않습니까.
그대가 보기 바랍니다.
아니라면
하기 바랍니다.
둘 다 해요.
시를 읽고 노래를 듣는다면
믿고-행해야지요.
삶이 되지도 않는 거 알아 뭐하겠습니까.
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