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시대로의 회귀 — 국제법은 종말을 맞이할까?
지구촌 곳곳에서 분명 군사 분쟁이 있었지만, 양차 대전과 같은 전쟁의 시대는 우리를 비켜 서 있었습니다. 한반도에 국한한다면 이렇게 오래 전쟁 없이 지내본 적이 있을까 싶습니다. 유럽 대부분의 지역도 그렇고, 아마도 세계 대부분의 지역이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크림 반도 침공에서 고개 내민 불씨가 러시아-우크라니아 전쟁(이하 러-우 전쟁)으로 터져 나왔고, 기다렸다는 듯이 팔레스타인을 둘러싼 이스라엘 대 중동 이슬람 지역의 대립이 불을 뿜었으며,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한 미국은 베네수엘라를 침공해 주권국가의 대통령을 범죄집단의 우두머리라며 영부인과 함께 체포해 갔습니다. 그리고는 연초부터 공공연하게 탐냈던 그린란드를 언급하며 “미국은 그린란드가 필요하다”고 즉, ‘달라’ ‘안 주면 뺐겠다’고 하였습니다. 이건 단순히 강대국이 약한 나라를 괴롭히는 수준이 아니고, 적성국이나 교류가 없던 나라뿐 아니라 무려 ‘군사동맹’(NATO: 북대서양 조약 기구)을 깨는 행위입니다. 실제로 덴마크(그린란드는 덴마크령 섬입니다)는 “나토가 깨질 수 있다”고 맞경고했습니다. 지금은 바야흐로 전쟁의 시기로 치닫는 것만 같습니다. 관점에 따라서는 제국주의 시대 열강들도 이렇게 규범을 무시하진 않았습니다. 일본제국이 조선-대한제국을 삼키기 위해 얼마나 공들여 허울뿐이나마 모양새를 갖추려 했는지 떠올릴 수 있습니다. 이번에 미국은 그런 수고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미국 주도로 만들어진 2차 대전 이후의 세계 질서, 이른바 ‘전후 체제’를 뒤흔드는 행위입니다. 인권을 앞세우고 전세계가 자원에 접근하고 상호 교류하는 데 어떤 장벽도 없애야 하며, 가장 작은 민족집단이라도 자기네 정치체제를 스스로 선택하고, 온전하게 곧 자립적이고 ‘신성불가침하게’ 주권을 지니며, 국제연합(UN) 등 국제조직과 국제사회가 이를 지지한다는 것이었습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국제연합군(유엔군) 참전을 결의하여 실행한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이런 일들에 미국은 앞장섰고, 때로는 손해 보고 때로는 이를 지렛대 삼아 이익을 보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이 질서는 미국이 주도했던 것이고, 지금 미국이 깡그리 무시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렇게 되면 주권국가를, 마치 한 국가 안에서 법이 모두에게 평등한 것처럼 동등하게 대우한다는 원칙, 이를 실행하기 위한 숱한 국제법과 해석들은 깨지고, 곧 무가치하게 사라져버릴까요? 속단하기 어렵지만 장담하기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건 이 현상과 현상이 야기하는 불안이 아닙니다. 벌써부터(이르게는 1980년대, 늦어도 2000년대 초반부터) 이 잠깐의 평화는 깨지고, 다극체제로 넘어가는 와중에 세계 질서가 흔들릴 거라는 진단은 많았습니다. 짧은 순간 이를 모두 정리할 필요도 없고, 제가 그런 재간을 지닌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렇지만 중요한 건 예견됐고, 경고했고, 세계는 여기에 별다른 대비를 하지 않았으며, 마침내 균열이 시작되고도 가능한 못 본 척했다는 것입니다.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도 가능하겠지만, 몰랐다는 변명은 불가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명을 믿을지 말지는 각자의 몫이지 어느 게 맞다고 강요하기도 힘듭니다. 마지막에는 ‘마음속’ 의도에 달린 일이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서술하고 해석하는 데 무수한 이론이 등장했고, 학계에서 버려도 대중에게는 애용되는 것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각자가 상식으로 사고했다고 하는데, 옆에서 무슨 사관이다, 무슨무슨 주의다 라며 딱지를 붙이기도 합니다. 그것들은 전부 맞고 전부 틀립니다. 역사학은 다른 학문과 다릅니다. 다른 학문의 대상이 인간의 의지와 별개이고, 그것들이 움직이는 법칙이 있어 발견할 수 있다면, 역사는 지나간 일을 사후적으로 규명할 수 있지만 그걸 그대로 미래를 예측하는 데 쓸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고 해서 모두가 같은 선택을 하진 않기 때문입니다. 다르게 판단하고 다르게 의도하여 다르게 생각하여 행동하며, 그 다른 행동들은 다시 타인들의 행동과 맞물려 다른 결과를 냅니다.
비록 역사 속에서 비슷한 때 비슷한 일들이 많이 벌어졌다 하더라도 결코 모두가 똑같지 않고, 결국 역사는 자연의 일, 우리가 법칙을 파악해 이해하고 이용할 수 있는 그런 일이 아니라 <인간의 일>이란 겁니다. 인간의 일로서 역사를 바라볼 때, 모든 이해와 설명 — 서술은 ‘윤리적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우리의 기대와 달리 역사학의 연구에서 과학적 결론은 없습니다. 모두가 추정이고, 할 수 있는 최선은 윤리적 결론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요? 미술사(『서양미술사』, 원제: The Story of Art)의 저자로 더 잘 알려진 에른스트 곰브리치(Ernst Hans Josef Gombrich, 1909-2001)는 세계사*를 쓰기도 했는데, 그가 만년에 덧붙인 최종장 이전 첫 번째 판본의 마지막 장은 1차 세계대전을 다루고 있습니다. 1935년에는 2차 대전이 일어나기 전이니까요. 그때 그가 책을 마무리하며 쓴 문장은 2차 대전을 끝내고, 3차 대전을 맞기 전인 우리에게도 유효할 것 같습니다.
[전략] 모두가 더 나은 미래를 희망하고 있다. 더 나은 미래는 반드시 와야만 한다!
[중략] 유유히 흐르는 거대한 시간의 강물에서 우리는 눈에 띄지 않는 존재이다. 늘 새로운 것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우리의 운명이란 밀려오고 밀려가는 파도 속에서 작은 물방울들이 벌이는 다툼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짧은 이 순간을 잘 이용하고자 한다. 그럴 만한 가치는 있기 때문이다.
— 에른스트 H. 곰브리치, 『예일대 특별판 곰브리치 세계사』, (박민수, 비룡소, 2019), 402.404.
“But we must make use of that moment. It is worth the effort.”
— 《A Little History of the World》의 Chapter 39, “Dividing up the World”
休
*1935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스물여섯 살의 나이로 『Eine kurze Weltgeschichte für junge Leser: Von der Urzeit bis zur Gegenwart』 즉, ‘젊은이를 위한 세계사’를 집필했으며, 이후 수차례 개정하여, 현재는 1998년 2월 런던에서 헌사를 쓴 마지막 원고를 2001년 세상을 뜰 때까지 스스로 영어로 번역하였고, 2011년에는 컬러 도판을 실은 일러스트 에디션이 나왔습니다. 이게 지금 우리 손에 남겨진 『예일대 특별판 곰브리치 세계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