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곽과 시선
윤곽(輪廓)이란 물체의 가장자리가 아닙니다. 시선(視線)의 끝자락이지요. 끝점들을 이어 만들어진 감각의 능선이 사고도 그리하라고 유혹하는 것이랍니다.
윤곽은 그래서 실재하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없는 것입니다. 현실적 존재라기보다 상상적 존재인 것입니다. 박쥐가 보듯이, 즉 음파를 쏘아서 일부는 대상의 이쪽 외피에 부딪치고, 일부는 관통하고, 일부는 다른 벽이나 경계에 부딪친 뒤 대상의 ‘저쪽’ 외피에 부딪치고 다시 이리로 오고, 또 물론 일부는 저쪽 외피를 관통해서 지연돼서 내가 되돌아오고……이런 식으로 모습을 안다고 할 때, 이차원 표면에 슥슥 그려내는 것 같은 ‘윤곽’은 잡을 수 없습니다. 있다손쳐도 지금껏 써오던 윤곽과 다른 것이 됩니다. 그리고 이로써 윤곽이 무언가 정밀하게 다시 정의하고 새로 이해하게 될 겁니다.
윤곽을 결정하는 사물 자체가 아니라 관찰자의 시선이란 것입니다. 관찰자의 시선, 관찰자가 누구인가, 어떤 역량과 구조를 지녔는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란 말입니다. 그러나 이조차 전부를 말한 건 아닙니다. 결국 양자의 관계성이 하나의 사실[fact]을 만드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실(fact)’이란 발견된 것이기보다 만들어진 것입니다.
라틴어 팍툼factum은 파체레facere(만들다, 행하다)에서 나온 말로, 본래의 뜻은 ‘이미 행해진 것’, ‘만들어진 결과’를 가리킵니다. 사실은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 사물과 관찰자의 시선이 만나 형성된 결과인 셈이지요. 윤곽이 대상에 본래 새겨져 있는 선이 아니라 시선의 작용 속에서 생겨나는 것처럼, 사실 또한 세계에 그냥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성립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대는 가장 빈약하고 미약할 때라도, 매순간 세상을 창조합니다. 창조할 수 있습니다.
休
+ 덧붙임
이때의 사실(fact)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립되는 것, 다시 말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라틴어 factum은 facere(만들다, 행하다)에서 나와, 본래 ‘이미 이루어진 행위의 결과’를 뜻했습니다. 반면 중세 스콜라에서 verum(참됨)은 사유가 대상과 합치될 때 성립하는 것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여기에는 미묘한 분리가 있습니다. verum이 인식의 올바름이라면, factum은 관계 속에서 생겨난 결과. 사실은 사물 그 자체의 속성이 아니라, 사물과 인식의 접속이 남긴 흔적입니다.
이 관점에서 윤곽은 verum의 대상이 아니라 factum의 형식에 가깝습니다. 윤곽은 사물에 내재한 선이 아니라, 관찰자의 역량·도구·방식이 사물과 만나는 지점에서 형성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현대 인식론이 말하는 ‘구성된 사실(constructed fact)’ 역시 이 연장선에 있습니다. 사실은 세계가 단독으로 산출한 값이 아니라, 세계와 관찰이 얽혀 만들어낸 산물입니다. 그러므로 사실은 임의적이지는 않되, 결코 무관계적이지도 않습니다. 윤곽이 시선에 의해 정해지듯, 사실 또한 관계에 의해 성립됩니다. 세계는 거기에 있고, 우리는 본다. 그러나 우리가 얻는 것은 언제나 그 만남의 결과—곧, 만들어진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