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하고 붕괴하자 — 요시다 타로와 아미티브 아차리아의 시선을 빌려 타고
『21세기 지정학』(2026)과 『몰락 선진국 쿠바가 옳았다』(2011) 두 권의 책을 읽고 한 편의 독후감으로 나눕니다. 한 마디로 <몰락하고 붕괴하자>는 제안을 드리는 글입니다.
기성 문명과 세계 질서는 언제나 스스로를 ‘최종 형태’로 제시해 왔습니다. 자신들이 구축한 제도와 기술, 경제 체계는 더 이상 대안이 없으며, 인류는 이 경로를 따라 성숙과 번영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확신이 반복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이 확신이 얼마나 취약했는지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기후 위기, 구조화된 불평등, 전쟁과 지정학적 긴장, 팬데믹과 공급망 붕괴는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합니다. 과연 우리가 ‘선진’이라 불러 온 문명과 세계 질서는 지속 가능한 것이었는가 하는 물음입니다.
요시다 타로의 『몰락 선진국 쿠바가 옳았다』와 아미타브 아차리아의 『21세기 지정학』은 이 질문을 서로 다른 위치에서, 그러나 깊이 맞닿은 방식으로 제기합니다. 전자가 쿠바라는 구체적 사례를 통해 근대 서구 문명이 전제해 온 발전 모델의 허구를 드러낸다면, 후자는 5,000년에 걸친 문명사의 장기적 시야 속에서 서구 중심 세계 질서가 예외적 국면에 불과했음을 보여 줍니다. 두 저작을 함께 읽을 때, 우리는 단순한 체제 비판을 넘어 문명 전환의 가능성과 조건을 사유하게 됩니다.
아차리아의 문제의식은 명확합니다. 우리가 당연한 기준으로 여겨 온 국제 질서, 즉 주권국가 체계, 자유주의 경제, 국제 규범과 제도는 인류 보편의 산물이 아니라 특정 시기 서구 문명이 주도한 역사적 구성물이라는 점입니다. 더 나아가 그는, 서구 문명이 스스로의 ‘고유한 발명’으로 내세워 온 많은 제도와 관념이 사실은 다른 문명권으로부터 배워 오고, 차용하고, 변형한 결과임을 반복해서 상기시킵니다.
예컨대 오늘날 근대적 행정과 법의 토대로 여겨지는 관료제는 고대 중국의 국가 운영 방식에서 중요한 영감을 받았으며, 수학과 천문학, 의학의 핵심적 성과 다수는 이슬람 문명을 거쳐 유럽으로 전해졌습니다. 인도는 숫자 체계와 논리적 사유의 중요한 기반을 제공했고, 동남아시아의 해상 교역 질서는 유럽의 세계 무역 확장에 결정적인 학습 모델이 되었습니다. 아메리카 원주민 사회의 공동체적 토지 이용과 생태 감각, 아프리카의 오랜 분권적 정치 전통 역시 ‘근대 이전’이라는 이유로 과소평가되었을 뿐, 서구 문명이 실제로는 끊임없이 관찰하고 흡수해 온 지식의 원천이었습니다. 아차리아는 서구 문명이 세계를 ‘가르쳐 온’ 존재라기보다, 세계로부터 배우며 성장해 온 하나의 문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인식은 오늘의 세계 질서를 바라보는 관점을 근본적으로 바꿉니다. 만약 현재의 서구 중심 질서가 인류 문명의 필연적 귀결이 아니라, 다양한 문명 간 교류와 차용의 결과였다면, 그것이 붕괴 국면에 들어섰을 때 다른 질서가 등장하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역사적 과정일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전환을 어떻게 맞이하고 설계할 것인가에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요시다 타로가 조명하는 쿠바의 경험은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쿠바는 냉전과 봉쇄라는 극단적 조건 속에서 생존을 강요받은 사회였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봉쇄 속에서 쿠바는 의식주, 의료, 교육, 문화, 그리고 인간의 존엄을 국가 내부의 시스템으로 유지하고자 했습니다. 대규모 산업화나 세계 시장 편입 없이도 기본적인 삶의 조건을 보장하려 했던 이 시도는, 효율과 성장만을 기준으로 삼아 온 서구적 발전 모델에 대한 실질적인 반문이었습니다.
오늘날 쿠바가 경제적·사회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은 자주 “쿠바는 실패했다”는 평가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이는 사태를 정반대로 해석한 결과일 수 있습니다. 쿠바는 봉쇄된 시기 동안 식량과 에너지, 의료와 교육, 최소한의 존엄을 상당 부분 자체적으로 해결해 왔습니다. 오히려 개방 이후, 소위 ‘세계화’에 편입되면서 식량과 에너지의 외부 의존이 심화되고, 의료와 돌봄 체계 역시 시장 논리에 잠식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쿠바의 시스템이 세계화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쿠바의 대안적 시스템이 폐기되고 이미 균열과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서구 근대 질서가 그 자리를 대신하면서 발생한 실패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쿠바라는 하나의 국소적 시스템이 세계 전체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단일 국가의 자립 모델은 기술, 자원, 기후, 외교라는 복합적 제약 앞에서 구조적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쿠바의 경험은 완성된 해답이 아니라 더욱 중요한 질문으로 남습니다.
아차리아가 강조하듯, 앞으로의 세계 질서는 하나의 문명이 다른 모든 문명을 이끄는 방식으로는 지속될 수 없습니다. 새로운 질서는 여러 나라와 사회가 함께 연대하고, 서로 다른 문명적 자산을 존중하며, 공동으로 실험하고 조정해 나갈 때에만 가능해질 것입니다. 쿠바의 시도 역시 고립된 실험으로 머무는 한 취약할 수밖에 없으며, 다자적 협력과 공동 설계 속에서만 비로소 확장 가능한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기존 문명의 붕괴는 분명 불안과 두려움을 동반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말하는 ‘몰락’과 ‘붕괴’는 파괴를 향한 구호가 아니라, 이미 시효를 다한 길에서 의식적으로, 적극적으로, 그리고 용감하게 벗어나자는 선택의 언어입니다. 그것은 끝을 선언하는 말이 아니라, 다른 문명과 다른 질서를 향해 스스로를 열어 두겠다는 긍정의 결단에 가깝습니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는 몰락의 종착지가 아니라, 어떤 방향으로 걸어 나갈 것인가를 묻는 갈림길일 수 있습니다. 과거의 질서를 연명시키는 데 머물 것인지, 아니면 다양한 문명이 서로에게서 배우고 빌려 오며 새로운 세계 질서를 함께 실험할 것인지는, 바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판단과 연대에 달려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 서로를 읽고, 자신을 비추어 쓰며, 그 생각을 다시 서로에게 건네어 이야기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대화해야 합니다. 멸절(滅切)이 우리의 과제는 아닙니다. 단절이 아니라 연결을, 정지가 아니라 변화를 선택하는 일, 그게 바로 우리가 이 시대에 함께 마주 서 있는 이유가 아닐까요. 몰락하고 붕괴하자! 이 마음과 뜻을 담아 드리는 말씀입니다.
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