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람이에게 | 칼을 줄게

인간 존엄의 한 주장 — 기쁨을 주오

by 이제월


인간의 존엄에 대한 여러 설이 있지만, 여기 한 주장을 소개하겠습니다.


인간이 왜 존엄한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인류의 역사 안에서 펼쳐진 오랜 이야기를 정말 함부로 확 줄여보겠습니다.


인간은 천사는 아니지만 짐승도 아니다.

플라톤은 인간의 고유한 위치를 이 둘 사이에 두었습니다.

순수하게 영적인 존재와 그냥 물질적인 존재 사이.

그리고 천사는 회의(懷疑)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다 아니까요.

동물도 회의하지 않습니다. 그는 다 모르니까요.

그리고 인간은 회의합니다.

인간은 모르고-아니까요.

모르고-안다는 건 무슨 말입니까?

모르던 것을 알기도 하고, 알던 것을 잊기도 한다는 말이겠지요.

이렇게 플라톤은 이데아를 볼 수 있고, 이데아를 모방한 현실에서 벗어나 이데아의 세계에 다가가는 이성에서

인간의 존엄을 찾았습니다.

이데아 — 아이디어.


이성을 중심에 둔 이해의 전통은 현재까지 면면히 이어져 내려옵니다.


다른 관점은 인간의 의지에 주목합니다.

인간은 타고난 게 무엇이든, 주어진 처지가 어떠하든

제 뜻한 바대로 바꾸어 가고, 견지(堅持)해 나가는 힘이 있습니다.

주지주의(主知主義)에 대응하는 주의(主意主義) 전통 또한 강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칸트는 통상 주지주의 전통과 주의주의 전통을 통합한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칸트의 철학이 미학과 영구평화론으로 발전한 것은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역사성에 주목하는 관점도 있습니다.

훗설의 현상학을 계승해서 발전적으로 파괴한 하이데거를 여기 놓을 수 있습니다.

그는 존재에 대한 관심을 시간에로 돌린 인물입니다.

그는 『존재와 시간』으로 철학이 하는 일을 영구히 바꾸었습니다.

비록 다른 일을 하고, 예전의 일을 하기도 하지만 철학의 분명한 범위가 확장된 건 부인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는 ‘인간’이란 이름이 신화화해 수많은 오류와 착각을 일으킨다는 것을 인식하고

‘현존재’(Dasein)라고 부르기를 제안합니다. 그 박력으로 봐서는 강요했다고도 생각됩니다.

다른 선택지를 모조리 소거해 버린 그는

인간존재의 특징이 매순간 ‘현재’에 새롭게 현존한다는 점을 부각합니다.


자, 이제 제가 이야기하려는 ‘한 주장’을 소개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이렇습니다.

존재의 품위가 있다면 — 존엄을 이야기했으니 물론 있다고 해야겠지요 — 그 품위는

더하거나 덜할 수있는가?


그랬을 때, 천사들과 천신들은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지고(至高)한 존재일는지 몰라도

자신들을 더 높일 방도가 없습니다.

그들의 완전성은, 그들이 비록 죄에 빠지고 악을 저질러 타락할 수 있을지언정 그것이

단 한 번의 영구한 선택이며, 그래서 그들은 바로 ‘그러한 존재’로서 영원한 표식처럼 남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천사도 악마가 될 수 있지만, 천사면 천사 악마면 악마이지

그 완전성의 양극으로 향하는 중간의 노정 위에 선 천사-악마는 없다는 말입니다.


짐승도 자연의 일부로서 순환할 뿐

이 전체 계(界)는 변화하지 않습니다. 그가 변화한다는 것 자체가 변하지 않는 속성이고

에너지 총량 불변의 법칙대로, 우리가 익히 알고, 과학자들이 발견하고 만장일치로 주장하는 바와 같이

— 저 또한 그들의 주장이 맞다고 생각하거니와 —

이 세계의 가장 확고한 제일법칙은 에너지의 보존, 불변의 법칙이니까요.

물질세계의 모든 존재는 사실 온통 한 존재이고, 그건 통으로 바뀌는 게 없습니다.


이제 인간을 봅시다.

자연의 일부로서 인간은 불변하는 일부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문명이 순환하는 무엇입니까? 생태계의 순환에 포함되나요?

인간은 영적입니다만 그의 선악과 존귀함과 비루함이 고정되나요? 그것은 끊임없이 변화하여

악인이 순수한 선인으로 바뀌기도 하고 고결하던 선인이 타락하여 악을 저지르기도 하지 않는가요?

우리 안에서 매순간의 갈등이 끊이지 않는 건 또 어떻습니까?


인간은 더 존귀할 수도, 더 비루할 수도 있는 존재이며

살아 있는 한 언제까지고 그렇습니다.

즉, 인간의 위치가 천사와 짐승 사이에서 고정됐더라도

인간은 변화하고 있고, 그렇다면 인간이 올라가는 만큼 천사도 밀어올려지고, 짐승도 끌어올려지리란 말입니다.


인간의 성장은

온 우주의 기쁨이다.


인간의 존엄함은 여기에 있다는 주장입니다.

인간이 다른 존재를 높이기 때문에, 혹은 떨어뜨리기 때문에.

인간은 우주의 균형에 한 몫 합니다.

가장 흔들리는 존재가

균형의 열쇠입니다.


어쩌면 그대 안의 가장 연약한 부분이

그대를 존귀하게 만들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 가운데 가장 보잘것없는 한 명이

우리를 존귀하게 만들 것입니다.


이를 놓치면

우리는 비루할 뿐 아니라

타락할 것이고

타자를 해칠 것입니다.


우리는 상처도 주고

기쁨도 줍니다.


나는 기쁨을 주는 쪽을 택하고 싶습니다.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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