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마스떼는 ‘To you’
나마스떼.
우리말의 ‘안녕하세요’처럼
인도 사람들이 흔히 하는 일상의 인사입니다.
그러나 인도를 여행하며 놀란 것은
그토록 정신 없고 바삐 움직이던 사람들이 인사할 때만큼은
인사를 주고받을 때만큼은 문득 전혀 다른 세계, 정적의 세계에 온 듯
멈추어서는 공손히 두 손 모아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더란 겁니다.
인사를 마치면 정지한 시간이 다시 흐르듯 소란스러워지지만
“나마스떼”(지역 따라, 남부 방갈로르 주에서는 ‘나마스카람’이라고도 하더군요) 하고 인사하는 동안은
무언가 성스러운 시간이 내려와 감싸는 것 같습니다.
한 주간 묵었던 아쉬람의 스승(‘스와미’라고 부릅니다. ‘구루’보다 낮춘 말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스승을 뜻하고, 성경을 번역하면서 “주님”, “선생님”, 그러니까 ‘라삐’를 ‘스와미’로 옮기더군요)에게
나마스떼의 뜻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분이 “To you”라고 대답하는 겁니다. 그냥 <투 유.> 이러니까 좀 의아했죠.
다행히 더 설명해 주셨습니다.
당신에게,라는 이 말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상대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
‘당신 안에 있는 신께 인사드립니다’라는 뜻이라고.
그러니까 내 감각과 경험이 확인할 수 없는 상대의 신성을 믿고, 존중하고, 그 순간 예배하는 겁니다.
떼이야르 드 샤르댕 신부는 예수회 소속의 가톨릭 사제이자 고고학자요 인류학자로서의 업적이 큰데
그는 인간이 영적 경험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우리가 영적 존재이고, ‘인간의 경험’을 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농부는 아닌데 농촌 체험을 한다거나, 군인은 아닌데 해병대 캠프에서 체험한다거나,
원주민은 아닌데 원주민 생활을 하듯이?
꼭 같지는 않지만 그런 걸 떠올리면 비슷합니다.
우리는 인간으로서 영적 경험을 하는 게 아니라
영적 존재인데 인간의 경험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 믿음과 통찰이 오늘날 얼마나 유효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에게는, 저렇게 인사하는 동안만이라도
이 믿음과 실천은 ‘전부’입니다.
다른 어떤 사실도 없습니다.
나도 그렇습니다.
나마스떼.
나도 당신 안의 지극히 높은 이에게 인사합니다.
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