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람이에게 | 달빛독서

공동체 윤리의 소환 — 루시 R. 리파드, 『오버레이』 읽기

by 이제월



『오버레이』 리뷰 & 에세이


자연과 인간, 시간의 층위에서 예술을 다시 묻다


루시 R. 리파드의 『오버레이』는 단순한 미술비평서가 아닙니다. 이 책은 선사시대와 현대미술을 나란히 놓고 비교하는 학술적 시도를 넘어, 예술이 어디에서 비롯되었으며 무엇을 회복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지는 사유의 기록입니다. 리파드는 “선사시대”를 과거의 원시적 단계나 미완의 역사로 다루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선사시대를, 현대 문명이 잃어버린 감각과 관계의 방식이 아직 남아 있는 다른 시간의 층위로 호출합니다.


왜 다시 선사시대인가


『오버레이』의 출발점은 현대미술에 대한 리파드의 비판적 성찰입니다. 20세기 후반, 특히 개념미술 이후의 미술은 형식적 급진성과 제도 비판을 성취했지만, 동시에 전문가 집단 내부의 언어로 고립되고, 삶의 현장과 감각적으로 분리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리파드는 이 지점에서 질문합니다. 예술이 정말로 “진보”해 왔다면, 왜 우리는 점점 더 예술이 삶과 무관해졌다고 느끼는가.


그가 선사시대를 다시 바라보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리파드가 발견하고 이후 다른 이들에 의해서도 재확인된 바] 선사시대의 예술은 장식이 아니었고, 시장을 위한 대상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의례였고, 기억이었으며, 공동체가 자연과 관계 맺는 방식 자체였습니다. 거석, 암각화, 미로와 같은 형상들은 미적 완성도를 겨루기 위한 오브제가 아니라, 인간이 시간과 죽음, 계절과 하늘을 이해하기 위해 남긴 표식(mark)이었지요. 리파드는 현대미술이 이 지점—예술의 사회적 기능과 자연과의 합일—을 다시 사유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오버레이: 겹쳐 읽는 시간과 장소


책의 핵심 개념인 ‘오버레이(overlay)’는 단순한 비유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는 리파드의 방법론을 관통하는 사고 방식입니다. 오버레이란, 선형적 시간관을 거부하고 과거의 상징과 현재의 실천이 같은 장소 위에 겹쳐 존재함을 인식하는 태도입니다. 선사 유적이 있는 장소에 현대의 대지미술이 등장할 때, 그것은 과거를 모방하거나 복원하는 행위가 아니랍니다. 서로 다른 시간의 층위가 같은 땅 위에서 공명하는 사건입니다.


이 책에서 리파드는 이 겹침을 세 가지 차원에서 분석하고 있습니다. 시간의 중첩, 공간의 중첩, 그리고 정체성의 중첩. 자연 지형 위에 인간의 의례적 행위가 더해지고, 개인 예술가의 감각 위에 인류 공동체의 신화적 기억이 포개어집니다. 이때 예술은 “새로운 형식”을 발명하기보다, 이미 말하고 있는 장소의 목소리를 다시 듣는 행위에 가까워집니다.


상징의 회귀와 장소의 윤리


『오버레이』에서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리파드가 원형, 나선, 미로와 같은 선사적 상징을 다루는 방식입니다. 그는 이를 신비주의적으로 미화하는 대신 이러한 형상들이 왜 반복적으로 현대미술에 등장하는지를 묻습니다. 그리고 그의 대답은 명확합니다. 이 상징들은 특정 문화의 장식이 아니라, 인간의 신체 경험과 시간 감각에 깊이 각인된 구조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대지미술에 대한 논의에서도 리파드는 단순한 형식 비교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는 현대의 대지미술을 선사시대의 ‘성소(sacred site)’ 개념과 연결하며, 장소를 다룬다는 것이 곧 윤리의 문제임을 강조합니다. 장소는 비어 있는 캔버스가 아니며, 언제나 이미 기억과 삶, 때로는 폭력과 배제가 축적된 공간입니다. 예술가가 그곳에 개입한다는 것은, 미적 선택 이전에 관계 맺기의 태도를 요구받는 일입니다.


2020년대의 오늘, 다시 읽는 『오버레이』


이 책이 2020년대의 오늘에도 여전히 강한 시사점을 갖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우리는 기후 위기, 공동체의 해체, 기술 중심 사회에서의 감각 상실이라는 문제 앞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예술 역시 시장 논리와 이미지 과잉 속에서 점점 더 소모적인 콘텐츠로 소비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리파드의 질문—예술은 어디에서 왔고,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는 낡은 물음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에서야 비로소 절실해진 질문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리파드가 제안하는 길은 거창한 해답은 아닙니다. 그는 과거로 돌아가자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겹쳐 보자고 말합니다. 선사시대의 감각과 현대의 조건을, 자연과 인간을, 예술과 삶을 서로 배타적으로 나누지 말고 같은 장소 위에서 다시 사유해 보자고 제안합니다. 그 겹침의 자리에서, 예술은 다시 의례가 되고, 기억이 되며, 삶을 지탱하는 감각의 기술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맺으며: 실마리를 잡기 위하여


『오버레이』를 덮으며 남는 인상은 하나의 선언이라기보다, 하나의 실마리에 가깝습니다. 아니, 어쩌면 바늘 같기도 합니다. 그는 우리에게 예술이 본래 공동체적이며, 본래 윤리적이라는 감각을 환기해 줍니다. 예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을 다시 질문하게 만들 수는 있습니다. 리파드의 관점과 태도, 그리고 장소를 직접 밟고 듣는 그의 방식은, 오늘날 예술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여전히 유효한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자연과 인간, 과거와 현재가 단절된 채로 남아 있는 한, 우리는 계속해서 길을 잃을 것입니다. 『오버레이』는 그 길 위에서, 다시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표식 하나를 새겨 주었습니다. 마치 선사시대의 인류 공동체가 거석이나 거석의 행렬을 남겨 둔 것처럼.



작가의 이전글예람이에게 | 햇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