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하여라, 나의 마음이여 (칼릴 지브란 산문시)
Be still, my heart; the world listens not to thy voice.
— Kahlil Gibran. <Be Still, My Heart>
고요하여라, 나의 마음이여
우주는 너의 소리를 듣지 않는다네.
— 나희덕 번역, 『고요하여라, 나의 마음이여』(1989, 진선), 「고요하여라 나의 마음이여」 중에서
이 일구(一句)는 제가 가장 사랑하는 시구(詩句) 가운데 하나입니다.
시가 하는 일, 어쩌면 해야 하는 일을
이렇게 압축하는 일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이슬람 수피 문학에서 보여지는 명령형, 성서적 선포의 문구도 마음에 듭니다만
가장 마음을 울리는 건 이 시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냥 밋밋하게 말하는 게 아니라
진리 밖에서 오들오들 떨고 선 청자를
‘초대’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부드러운 명령 즉, 당위의 초대입니다.
명령이 초대가 될 수 있는 건
시 안에서, 시적 화자 자신 안에서,
심지어는 어느새 시인과 독자, 시와 청자 사이에서
성립하는 숭엄한 관계 때문입니다.
— 나는 너, 너는 나.
내 마음은 응당 고요하여야 합니다.
좋죠. 그런데 왜?
우주가 내 소리를 듣지 않으니까요.
그게 왜 내 마음을 소란스럽게 하기는커녕 고요하게 만드는 겁니까?
그건 내가 얼마나 하찮은지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찮다니, 그럼 더 슬프고 노여워야 하지 않을까?
아닙니다.
하찮은 나를 바라보는 나는 위대하기 때문입니다.
하찮은 나를 바라보기 때문에 위대한 탓입니다.
“내 마음”을 호명하는 나는
이를 일러 “너”라고 하지 않습니까?
나는 나로부터 벗어납니다.
벗어날 수 있고, 그렇게 했더니
진실을 보고, 진실을 말할 수 있습니다.
야, 너, 그만해. 우주는 네 소리 듣지 않아, 하고 말이죠.
시는 우리의 왜소함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또한 동시에 우리의 위대함도 보여 줍니다.
우리가 위대한 건 우리가 자기 자신의 존재를
감옥으로 쓰지 않고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위대한 영혼은
일시적인 생의 순간들에
한시적인 몸의 한계에 갇히지 않고
스스로를 거기 가둘 생각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그 자신이 ‘우주’입니다.
나는 너, 너는 나.
그런데 나는 우주,
우주가 나.
우리의 무한함과
우리의 아무것도 아님을
한꺼번에 보여 주고
둘 사이에서 자유를, 일치를 주는 것
시가 할 수 있는,
사실 늘 하고 있는 일입니다.
마음속에 끓어오르는 온갖 불순물이
한방에 날아가 흩어지는 말
우주는 너의 소리를 듣지 않는다네.
고요하여라,
나의 마음이여.
두려워 마세요.
이토록 작아서
이토록 크니.
休
*칼릴 지브란의 이 작품은 그가 사망(1931년)한 후, 1934년에 출간된 시집에 수록되었는데,
이 시집이 처음 출간될 때, “아랍어에서 영역”했다는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
그러나 아랍어 원문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아랍어로 출간된 작품을 확인할 수 있지만
그게 지브란이 쓴 그 원문인지, 아니면 영역본에서 오히려 아랍어로 번역한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