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람이에게 | 나무야

몸과 기관

by 이제월


우리의 몸은 부분과 전체의 완전한 일치에 의해 구성됩니다.

내 몸이 몸으로서 작동하는 까닭은, 혹은 그렇게 작동함으로써 증명하고 있는 것은

몸의 기관이 ‘정상’ 작동한다. 즉, 효율적으로 아니, ‘유기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유기적, organic 하다는 것은 organ, 기관(器官)으로서의 성격을 지닌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관은 신체의 일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이게 그렇게 단순하게 넘길 일이 아닙니다.


흔히 ‘유기적(organic)’이라는 단어가 일상에서 흔히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뜻으로 쓰이지만,

철학에서건 생물학에서건 이는 기계의 ‘정상 작동’과 비겨 뿌리부터 다릅니다.


첫 번째 차이는 목적이 어디 있느냐는 겁니다.

이를 내재적 목적과 외재적 목적으로 대별(大別)할 수 있습니다.

기계의 목적은 설계자나 사용자에게 있습니다. 예컨대 시계가 정확하게 가는 것은 시계 자체를 위한 목적을 지니지 않습니다. 시간을 알려고 하는 시계 바깥, ‘외부의 인간’을 위한 것이지요. 기계가 정상 작동한다는 건 외재적 목적에 봉사하는 상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반면 유기체(有機體, an organism; an organic body; an organized matter)는

저 자신을 지키고 키우려는 ‘내재적 목적(Talos)’을 갖습니다. 생명체가 유기적이라는 건 단순히 부품이 맞물려 돌아가는 것을 넘어서, 전체가 부분의 생존을 돕고, 부분이 전체를 유지시키기 위해 활동하는 ‘자기 목적적’ 상태를 가리킵니다.



두 번째 차이는 관계의 성격에 있습니다.

상호 구성이냐, 단순 조립이냐 하는 물음입니다.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는 그의 저서 《판단력 비판》에서 유기체를 '자연의 목적'이라 부르며 기계와 엄격히 구분했습니다.

기계의 작동은 이런 기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품 A가 없으면 기계는 멈추거나 효과가 떨어진다, 하지만 부품 A가 부품 B를 스스로 만들어내거나 수리하진 않는다. 왜? — 부품들은 ‘서로 독립적이며, 외부에서 조립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유기적 연관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우리에게 선사합니다. 단순 조립이 아니라 ‘상호 구성’하기 때문이지요.

유기체 내에서 간은 심장을 위해 존재하고, 심장은 간을 위해 존재합니다. 단순히 '잘 작동하는 것'을 넘어, 각 부분이 서로를 끊임없이 생산하고 재생산하지요.


칸트의 정의를 따르자면, 기계는 '동력(motive power)'만 있지만, 유기체는 '형성력(formative power)'을 가집니다. 따라서 "유기적이다"라는 말은 시스템 스스로가 자신을 조직하고 치유하는 능력을 포함합니다.


세 번째 차이는 오류와 변화에 대한 태도로 나타납니다. 적응 vs 고장

'정상적'이라는 개념은 기계와 생명체에서 다르게 작동합니다. 한쪽은 적응을, 한쪽은 고장을 의미하지요.

기계가 정상적이다, 효과적이다 하는 말은 설계도(spec)와 일치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오류가 발생한다면 이건 ‘고장’이지요. 외부 수리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유기체가 유기적이라는 말은 환경과의 동적 평형 상태(Homeostasis)를 가리키며 오류가 발생할 때, 이는 고장이 아니라 ‘질병’ 또는 ‘자극’이고, 스스로 치유하거나 적응합니다.

기계의 효과성은 최소 비용으로 최대 출력함 즉, 효율성을 뜻하지만, 유기체에게는 생존과 번식을 위한 유연한 최적화 즉, 적응성을 뜻합니다.


요약하자면, 생명체가 유기적이라는 것은 단순히 "성능이 좋다"는 뜻이 아니란 말이지요. 그것은 전체와 부분이 서로 원인이자 결과가 되는 것, 외부의 설계 없이도 스스로를 유지해 나가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기계가 잘 작동한다: 정해진 기능을 오류 없이 수행한다. (수동적 최적화)


생명체가 유기적이다: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해 전체 시스템이 유연하게 상호작용하며 생명을 지속한다. (능동적 자기 유지)


현대의 시스템 이론은 칸트의 생명관과 더불어 '자기 조직화(Self-organization)' 능력이 기계의 '효과성'과 유기체의 '유기성'을 가르는 결정적 잣대라고 추론할 논거를 제공해 줍니다.


우리의 몸은 단순한 조립이나 우연한 중첩이 아니라 명백히 다른 만남과 작용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므로 몸의 어떤 일부도 소홀히 여기거나 함부로 다루지 마십시오. 귀한 이를 맞이하듯 ‘모심’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자기 자신을 아끼고 사랑할 때,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황금률(黃金律, the golden rule)을 도입해도 좋을 것입니다.


단순히 앞세우라거나(우선시) 아끼라는 게 아니라 ‘서로를 살리게’ 하라는 말이지요.


그대의 몸 속 기관으로부터 배우십시오.

낱낱이 어엿하게 홀로 생명인 ‘세포’들이, 무려 80조(지구상 인구는 현재 82억 6000만 명 정도라고 하니 거의 일만 배, 구천칠백 배가 넘는 단위 차이)에 이르는 세포들이 모여서 함께 커다란 ‘한 생명’인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 중간에서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 ‘기관’이고요.



스승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살아있는 그대 자신이 스승이요, 교과서요, 첫 번째 숙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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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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