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람이에게 | 물길

평화를 빕니다

by 이제월


수요일마다 역사와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고 합니다. 그런데 요사이 벌어지는 일들을 지켜보며 마음이 무겁습니다. 인류사 가운데 전쟁은 잠시도 쉬지 않고 어디선가는 벌어지고 있었지만, 작금의 상황이 마음을 무겁게 하는 까닭은 많은 경우 전쟁이 ‘정상’이 아니고 ‘비상’이었다는 데 있습니다. 실제로 전쟁이 끊이지 않아도 그것이 정상 상태가 아니고 비상 상황으로 이해된 까닭은 명시적이건 암묵적이건 전쟁이 없는 상태를 정상으로 여기고 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일종의 ‘합의’이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두 번의 세계 대전을 끝내고 국제연합(UN: United Nations)을 창설하면서 수많은 국제조약과 선언, 국제기구가 등장하고 국제사법재판소를 설치하는 등 이른바 ‘전후체제’를 구축한 뒤로 국제적 분쟁은 ‘분쟁 지역’의 일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파급력이 큰 전쟁이 발발하고 이 전쟁이 4년간 이어지면서도 막연하게 세계는 ‘전쟁 반대’의 기조를 유지하고 있었고, 이러한 질서에 대한 수호 의지가 있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속된 말로 1짱인 미국이 연초부터 타국 영토에서 주권국가의 국가수반을 군사작전을 통해 ‘체포’하고, 해상을 봉쇄하며, 다시금 ‘참수’ 작전을 수행한다며 학교와 병원 등 비군사시설을 폭격하여 어린아이 등 민간인을 학살하기를 주저치 않으면서, 전후의 국제질서가 더는 유지될 수 없다는 현실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기성의 질서에 머무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날마다 업데이트되는 미국-이란 전쟁 상황은 이미 배럴당 국제 유가 100달러를 넘나들고, 원유의 90%, 천연가스의 20%를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해 수급받던 한국과 역시 에너지 해외 의존도가 높은 일본의 증시는 막대한 금액이 증발하였습니다. 아마도 이들 중 많은 것들은 회복되겠지만, 사라진 인명과 부상, 상처는 남을 것이고, 불신과 불안도 더 깊고 광범위하게 뿌리내릴 것입니다. 우리는 이전의 질서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조 바이든이 취임하면서 “미국이 돌아왔다”(America is back.)고 선언하였는데, 이제 그런 터미네이터의 약속(I’ll be back)은 기대할 수 없고 기대해서도 안 됩니다.

그래도 우리는 다음 질서를 만들 것입니다. 혼란을 어떻게든 수습하고 좋든 싫든, 언제나처럼 불완전하지만 제법 작동하는 질서를 구상하고 모의하고 협상하여 만들어낼 것입니다. 지금 이러한 우리의 마음에 언제 나에게 닥칠지 모르는 위기에 대한 공포감에 매몰돼서 군비 경쟁으로만 치닫지 않고 대화를 향한 문을 늘 열어 두기를 바랍니다. 오늘과 내일을 향하여, 각자의 소망과 다른 필요와 욕구를 인정하면서 바랄 수 있는 것, 같이 바라자고 권유할 수 있는 건 이 하나뿐인 것 같습니다.

평화를 빕니다.


그에 필요한 지혜와 용기, 정직함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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