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그대가 아름다움을
출판된 본문⟫ n.83
만약 그대가 아름다움을 노래한다면
비록 사막 한가운데 홀로 있다 하여도
들어주는 이가 있을 것입니다.
원문⟫
If you sing of beauty though alone in the heart of the desert you will have an audience.
새로 한 번역⟫
만약 당신이 아름다움을 노래한다면
사막 한가운데 홀로 있을지라도
한 명의 청자(聽者)를 가질 것입니다
읽기글-1⟫
이 말은 왜 이다지 기쁘고
서럽습니까?
나의 기쁨과 슬픔은 맞닿아 있습니다.
둘을 비교하기는 쉽지만
당신도 알 것입니다.
누구도 제 손바닥과 손등의 분명한 경계를 만날 수 없다는 것을.
그대가 노래합니까?
그대가 혼자입니까?
그대가 듣습니까?
그대는 여럿입니까?
이 연결 위에 연결되지 않은 것을 가리켜 보이십시오.
아직 아무도 이 청을 들어 주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시간의 문제가 아니란 것을
나 또한 어렴풋이 알고 있습니다.
읽기글-2⟫
아래 논어 구절을 읽다가 바로 이 생각을 했습니다.
古之學者 爲己 고지학자 위기: 옛날 배우는 자는 자기를 위했고
今之學者 爲人 금지학자 위인: 요즘 배우는 자는 남을 위(해 공부)한다.
제14편 헌문(憲問) 편에 나옵니다.
공부가 저한테 쌓이면 그건 참배움입니다.
항아리에 물을 부으면 항아리에 물이 차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나 공부가 남에게 보이고 남에게서 메아리가 있기를 바라며 한 것이라면
항아리에 물을 붓는다면서 밑을 깨서 독의 물이 새게 하는 것과 같아
공부가 쌓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모든 아름다운 행위, 모든 올바른 행위가 그렇습니다.
우리는 누구도 더 좋은 것을 주고 더 나쁜 것을 얻지 않습니다.
적어도 내게는 더 귀하니 그것을 얻고자 다른 것을 내 주는 것입니다. 언제나 내주는 것은 얻는 것보다 헐한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가장 귀한 것을 지니고 있다면
그것은 다른 것과 바꿀 수 없습니다.
당신이 참된 일을 한다면 다른 갚음(보상, 報償, reward)이 불가능한 까닭입니다.
그때에는 도리어 그 보상이 보상이 아니라 손상이며, 모독이 됩니다.
그대가 부르는 노래는
그것이 아름답고 참되면
그대 자신에게 바쳐지고
그대 안에서 한 명의 타자, 언제나 결코 알 수도 쥘 수도 닿을 수도 가질 수도 없는 무한한 타자, 즉
오직 가능성으로만 존재하는 신(神)의 경청을 향해 흘러갑니다.
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