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람이에게 | 나무야

누구와 함께하는가

by 이제월


공부란 별 게 아닙니다.

더 객관적으로 사고하고

더 주관적으로 표현하는 일입니다.


수용하고 수렴하는 건 객관타당하게 하고

이를 간직하고 지키면서도

얼마나 나답게 펼쳐내는가 하는 거죠.


비단 언어와 표현예술들뿐 아니라

수학과 과학, 공학, 정치와 경영, 역사와 사회, 그밖에 모든 일에서 그렇습니다.


내가 나와만 함께하고 있다면 애기입니다.

나와 내 형제지간에 머문다면 역시 어린이입니다.

청소년쯤 되면 친구나 동료들로 범위가 넓어지겠지요.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을 동료가 받을 상처 때문에 분개하고 주장하고 싸울 수 있습니다.

그 범위가 점점 넓어져

인류와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함께 생각할 인류는 지구와 함께 생각하는 인류여야 하고

다만 말과 글로 뜻을 나누는 것이 인류이니까

한 사람의 애씀이

인류로 하여금 다른 생각과 다른 행동을 하게 만들고

그 전체성이 확장되면 다른 삶의 방식이 나옵니다.

때로는 틀리고

때로는 맞지 않고

사실 대부분은 틀리겠지만

그래도 내가 ‘같이 읽고’ ‘같이 쓰는’ 이들

내가 고려하고 감응하는 범위가 넓으면 넓을수록

깊이가 깊을수록

어찌할 도리 없이


헤엄칠 줄 몰라도

물에 빠지면 허우적대듯

그렇게 우리는 발버둥칠 것이고

살아 있는 한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새롭게 시도할 것입니다.


그람시가 손바닥만한 감옥 공간 안에서 말한 것처럼

이성으로 비관하고

의지로써 낙관할 것입니다.


내가 누군가와 함께하는가는 정말로 중요합니다.


그래서 도둑질하지 않을 수 있고

강도가 되지 않을 수 있고

사기를 치지 않고 폭행을 저지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도 우리는 상처를 주고받습니다.

교통사고와 비슷합니다.

나만 해서 되는 일이 아니고

내가 하는 일이 그 맥락에서 완전할 수 없으니까요.


그렇지만 계속 묻고 갱신할 사항은

나는 누구와 함께하는가입니다.


“신과 함께 가라”(Vaya con Dios)

까지 아니어도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까지는 아니어도

좀 더 확장된 형제애(Brotherhood)는 기대합니다.

매일 조금씩 더, 때로는 힘에 부쳐 뒤로 밀리더라도

천연덕스럽게 매일 새로 조금씩 나아가세요.


‘쉽네’ 하지는 않더라도

‘해내네’ 하고 같이 손뼉을 칠 만큼, 그럴 때까지.


공부는 그 끈기요

그 희망이요

그 수고입니다.

그리고 그 애닯음입니다.


내가 함께하는 그가 굶은 채로는

내가 배부르지 못하는.


철없던 사람이

배고파 우는 제 아이를 보며 느꼈던 것 같은.


그것을 만인에 대해

온 세상에 대해 느낄 때


우리는 혼란을 그치고

명료해지며

불안을 멈추고

단호하게 결정하고 나아갈 수 있습니다.




나무에게

바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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