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서와 위계 지키기
어디서 한 조각을 얻어듣고는 그걸 부풀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슬쩍 보고 전부를 꾸미기도 하고요.
그러나 실제로 어느 한 조각이 가치가 있고 효능을 발휘할 때, 그것은 나머지 부분들과 연결되어 ‘전체’로서 발휘했던 작용이며, 이 작용의 본체는 그 부분이 아니라 그 전체입니다. 그 전체의 한계를 개선하기 위해 어느 부분은 지키고 어느 부분은 버리기도 하겠지만 그 전체를 빼고서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흔하게 ‘주객전도’(主客顚倒)라고 말하죠? 이 요리의 킥은 고수야, 하고 말할 때, 그렇다면 고수만 가져가면 좋은 요리가 되나요? 그 전체에서 고수가 기능한 거지, 아무데나 아무렇게나 고수를 쓰면, 고수를 왕창 쓰면 그 요리에서의 풍미와 차별점이 발생하는 건 아닙니다.
이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지금 이 상황이 그런 상황인지 알아채지 못할 뿐이지요. 이걸 어떻게 알까? 혹은 알았다면 어떻게 풀어갈까?
첫째, 시간 속에서 풀어야 합니다. ‘순서’를 보라는 거죠. 순서가 맞지 않으면 좋은 행동과 좋은 방법도 나쁜 영향을 미치고 일을 아예 그르치기도 합니다. 콩나물국을 끓일 때 뚜껑을 열고 끓여도 상관없지만, 만일 일단 열었다가 다시 덮고서 더 끓였다면 먹기 불편한 정도의 강한 비린내를 각오해야 합니다.
둘째, 위계를 발견하고 지켜야 합니다. 낱낱의 사실들은 상위 체계와의 연결을 유지하고, 동위 체계의 다른 요소들과는 상위 요소들이 이루는 체계 안에서 연결되고 동조(同調, alignment)되어야 합니다. 동위에 있는 어느 한 요소가 다른 요소들을 종속시켜서는 안 됩니다. 예컨대 한 사람의 행동을 그 국적, 인종, 성별, 직군 등으로 일반화하면 안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어느 한 사람의 행동이, 그가 군인이고, 군인에게 부여된 행동에 부합한다면, 이 상위체계와의 연결로 인해, 다른 군인들에게도 비슷한 행동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다른 사람에게서는 ‘군인다운’ 행동이 어떻게 다르게 변주될 수 있는지도 예측 가능해집니다.
마음이 앞서도 살펴서 때에 맞게 해야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간단한 잠금장치의 비밀번호도 맞는 숫자들을 순서를 바꾸어 입력하면 문을 열 수 없습니다. 반복되면 아예 확 잠겨서 접근 자체를 할 수 없게 되기도 합니다. 사람의 마음도 그렇고 조직들 사이의 일도 그렇습니다. 일과 사람이 모두 우리와 아예 무관한 게 아닌 이상 우리의 속성을 닮고, 우리는 자연의 속성을 닮습니다. 자연의 핵심 속성은 이 자연이 ‘하나’라는 데 있습니다. 그러니까 무제한히 따지기만 하잔 건 아니고, 주어진 일과 주어진 문제 특히, 갈등과 대립이 있다면, 혼란과 선택 장애가 온다면 그럴 경우, 한 단계 더 위로 가고, 한 번 앞과 한 번 뒤의 맥락을 짚어서 ‘내 위치’를 파악하고 이 ‘일의 위계’를 파악해서 그것이 포함된 더 큰 단위, 적어도 한 단위나 두 단위 더 큰 것, 이 집합을 포함하는 집합을 인식하여 판단하고, 결정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생각해보면 대단한 것도 아니고 어려운 일도 아니지만, 이 하나도 안 복잡한 일을 우리는 안 해 버릇해서 서툴게 하거나 틀리거나 못하고 시셋말로 ‘뇌 정지’가 옵니다.
마사지하듯 사고를 풀어봅시다. 사고를 푸는 마사지는 ‘언어로 구체화’하는 것입니다. 말로 해보고, 꼭 글로 써 보십시오. 그리고 내가 하려고 서두는 것의 앞과 뒤의 문장도 쓰십시오. 한 단위를 이룰 때까지 앞뒤로 계속 붙이고, 설명을 달고, 반론을 달고, 변호하고, 질문하고, 검토하십시오. 마침내 설득이 되는 한 단위를 찾으십시오. 순서를 지키고, 위계를 지키십시오. 이걸 극대화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순천자흥 역천자망(順天者興 逆天者亡).
『맹자』(孟子) 「이루상편」(離婁上篇)에 적힌 말로 “하늘의 뜻을 따르면 흥하고 하늘의 이치를 어기면 망한다”는 얘깁니다. 흔한 얘깁니다. 무리하고 억지 부리다 망한다는 거죠.
흥해 봅시다. 흥을 탑시다.
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