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지 않습니다
김보영 작가는 『SF 거장과 걸작의 연대기』(2019, 박상준, 심완선과 공저)에서 필립 K. 딕을 “가상 현실의 원조”라고 상찬하였습니다.
필립 K. 딕의 작품들은 여러 SF 영화가 원작으로 삼을 만큼 풍성하고, 닳지 않는 상상력을 가질 뿐 아니라 진지하고 깊은 질문들도 품고 있습니다. 그중 오늘 생각해 보는 작품은 『높은 성의 사내』(1962)입니다. 최근 넷플릭스에도 드라마 시즌이 여럿 등록된 걸 보았습니다만, 발표 직후 SF 소설이 받을 수 있는 최고 영예인 휴고상을 수상한 원체 힘 있는 작품입니다. 일종의 대체역사인데 제2 차 세계대전이 연합국이 아니라 독일-이탈리아-일본의 추축국의 승리고 끝나서 일본과 독일의 전제주의가 세계를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미 동부는 독일이, 서부는 일본이 통치하고 있으며, 중간의 로키 산맥 지대가 완충지로 남아 있지요. 소설 속에서 주인공은 연합국이 승리한 대체 역사 소설을 쓰는 사내를 만납니다. 작중에서 주인공은 현실이 가짜이고 소설이 참이라는 혼동을 느낍니다. 작품 속 구조는 세 개 층위로 이루어져 겹겹의 액자식 구성을 보입니다. 실제 우리가 사는 현실을 1층이라 합시다. 독자인 우리는 연합국이 승리한 세계를 살고 있으니 어떻게 해도 작품을 읽으며 이를 견주어 보고 생각하며 읽게 됩니다. 2층은 작중 현실로서 추축국이 승리한 암울한 미국이 배경입니다. 작품 속 연대가 작품이 발표되던 1962년이니까 당대 독자에게는 더욱 암울한 현실감이 있었을 겁니다. 마지막 3층은 작중 허구로서 작품 속에 아벤젠(높은 성의 사나이)이 쓴 소설 『메뚜기는 무겁게 짓누른다』 속 현실로 연합국이 승리한 세계를 그리는데, 다만 이는 [작품 속에서] 현실과는 다릅니다. 작품의 전부를 이야기할 순 없지만 작중 인물들은 2층에 살면서 3층을 갈망합니다. 그러다가 결말에서는 1층(혹은 그 이상의 진실)을 발견합니다. 작품은 우리가 믿는 현실이 유일한 실재인가 묻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 만일 다른 뉴스를 들었다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다른 뉴스를 들으려면 어디서부터 달라졌어야 할까. 역사의 어느 단추가 다르게 끼워졌다면 오늘의 이 참사가 없을까?
그러나 단추는 이미 꿰어졌고 이걸 바꾸는 일은 없을 겁니다. 다중우주나 시뮬레이션 우주를 상상할 수 있지만, 설령 그게 진실이라 하더라도 ‘다른 곳의’ 진실입니다. 우리는 지금 여기를 살고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남는 건 하나입니다. 지금 단추를 잘 꿰어야 합니다.
나중에 올 일들에 전제가 되는 매순간의 선택을, 우리는 즉답, 짧은 주기로 돌아오는 보상과 반응 대신 길고 긴 주기에서 더 많은 걸 품는 커다란 원을 상상력으로 그려보며 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살짝 트는 것이 미래 어느 자리에서는 중대한 다름을 선택할 테니까요.
어제 저녁 뉴스의 내용입니다. 2013년 고 김오랑 중령에게 ‘무공훈장’을 추서하라는 결의안이 추진됐습니다. 그러나 “여기 있는 예비엳ㄱ과 현역 대부분은 반역군의 후배다” “군이 하나가 돼야지……” “서로 좀 용서도 해주고, 묻어도 줘야 하지 않나”라는 반대가 있었고, 당시 새누리당 의원은 ‘군의 결속’을 주장했습니다. 가까스로 통과된 뒤에도 당시 국방부는 나라를 뒤흔든 반란군과의 교전을 '전투'로 인정할 수 없다는 서글픈 법리 해석을 내놨습니다. 그래서 훈장은 ‘무공’이 아니라 ‘보국’의 이름으로 갈음됐지요. 그리고 어제 3월 31일 정부가 보국훈장을 취소하고, 가장 높은 공적인 ‘무공훈장’을 추서하리고 했습니다. 뉴스 앵커는 “지난 47년간 맺혀 있던 질문, ‘군인이란 무엇인가.’ 이제야 국가가 그 물음에 답을 완성했습니다”라고 논평했습니다.
정치란 무엇인가, 경제란 무엇인가, 정의란 무엇인가, 역사란 무엇인가, 국익이란 무엇인가, 평화란 무엇인가, ……우리 앞에 놓인 질문들에 바른 답을 내어 저 긴 유예가 다시 일어나지 않게, 우리 탓으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해야겠습니다. 그 길은 가시밭길일 수도 있지만, 대신 명쾌합니다. 모든 이해관계를 벗어나는 것입니다. 마치 이렇다할 무언가를 한 적 없는 청년세대가 마음껏 기성세대를 욕하고, 이를 통해 시비가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나듯이. 우리는 우리의 이해관계를 벗어나 제삼자의 눈으로, 필요하다면 ‘지구의 눈’으로 바라볼 때, 평범한 보통의 지성만으로, 6학년이나 중학교 1,2학년 정도의 사고만으로도 충분하게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더 작은 것으로 더 큰 것을 덮어서는 안 됩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하지만 않는다면 다 보입니다.
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