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읽기(1) -고향집에서(2)

<가> 단락 해명

by 이제월

해명(解明)



<가> 단락 해명


참 오랜만에 돌아온 내 고향


고향은 무엇, 어디인가? 오랜만의 귀향이라니, 그 까닭은 무엇인가?

고향이란 태어난 곳, 혹은 어려서 자란 곳이다. 그곳은 출발점이다. 만약 우리가 출발점에 서 있다면 우리는 돌아올 수 없다. 이미 와 있으므로. 그러나 우리가 이동하였다면 우리는 ‘가거나’ ‘가지 않거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go’가 아니라 ‘come’이다. 왜냐하면 그곳은 미지의, 미답의 장소가 아니라 ‘그곳’ 즉, 이미 알고 있는 어디이기 때문이다. 그곳은 출발점. 그러므로 그곳은 필연하게 ‘떠나온 곳’이다. 현재점에서 우리는 오직 ‘돌아올’ 수 있는 곳으로서 고향을 갖는다.

그런데 어째서 오랜만인가? 그것은 노래가 이어지며 드러난다. 물리적 위치로서의 고향에는 여러 차례 돌아왔다. 돌아오고 떠나길 반복했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진짜 고향이 아니다. 고향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그곳은 이미 드러난 고향이 아니고, 이미 겪은 고향이 아니다. 단지 고향으로 경험될 수 있는 잠재적 고향, 기억에 의해 고향을 마주칠 곳으로 호명된 곳, 지정된 약속 장소 같은 곳이다. 노래하는 이는 ‘오랜만’이라는 부사를 통해 그가 지금 그 드문 기회, ‘고향’을 정말로 경험할 순간에 왔다는 걸 예고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발신자가 자기 메시지를 온전히 이해하거나 오롯하게 인식하는 것은 아니다. 그럴 수도 있고, 같은 정도로 안 그럴 수도 있다. 아무튼 노래하는 이는 노래 속에서 그것을 노래하고 있다. 그 자신이 의도하지 않아도 첫 소절에서 이 노래가 무엇을 말하는지 전부를 예고하고 있다.



집 뜰엔 변함없이 많은 꽃들


집은 아무런 설명 없이 고향과 동의어로 대치하여 나타난다. 둘은 장소의 크기 때문에 의미가 다른 게 아니다. 고향은 객관적 기초이고, 집은 주관적 기초다. 고향은 ‘그곳’이지만, 집은 ‘이곳’이다. 나의 것, 나의 자리, ‘의’라는 모호하고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말을 뺀다면, ‘내가 있을 곳’이다. 내가 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자리이다.

이 집 뜰에는 ‘변함없이’ 많은 꽃들이 있다. 많은 꽃들, 풍부함. 변함없이 풍요로운 곳으로 집은, 고향은 드러난다.



기와지붕 위 더 자란 미류나무


변함없음을 강조한 데 이어서 변화를 언급한다. 미류나무는 ‘더 자란’ 것이다. 이것은 앞에 것과 모순되지 않는가? 그렇지 않다. 두 가지는 동시에 가능하다. 변하지 않아서 좋은 것은 변하지 않고, 변하여 좋은 것은 변한다. 즉, 좋은 방향성, 좋음이 충만한 상태라는 하나의 서술 안에 들어온다. 하나의 명제 안에 담을 수 있다면 모순이 아니다.



그 가지 한구석엔 까치집 여전하네


미류나무의 가지 한구석. 끝은 변화가 가장 예민하게 펼쳐지는 곳이다. 그것은 전체적으로 느슨할지라도 첨단에서는 긴박하다. 그런데 거기에 ‘여전’한 것이 있다. 까치집이 여전하다. 변화가 파괴나 약탈을 수반하지 않는다는 것. 변함없음과 변함이 가장 놀랍게 조화된 모습이다.



참 오랜만이야


‘나’는 어디에 있다가 왔는가? 지점뿐 아니라 현상, 흐름에 있어서. 어찌하여 ‘참 오랜만’인가. 이는 자신에게 낯설다는 것뿐 아니라, 자신이 낯설어 한다는 것뿐 아니라 그것 자체가 잊었던 것을 환기한다고 할만큼 낯설어진, 먼 것이 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변화함과 변화하지 않음, ‘이다-아니다’의 양자적 공존, 아울러 그것 - 그 변화가 파괴나 약탈을 수반하지 않는다는 점, 곧 ‘반-생명’을 취하지 않고 생명의 현재 포지션을 바꿀 수 있다는 점이 낯설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오랜만이다. 그리고 오랜만이라는 건 그것이 과거에도 경험한 것, 과거에 존재한 것이라는 것이며. 다시금 오랜만이라는 건 그것이 그런데 지금 현재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이것이 고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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