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단락 해명
누렁이는 고향에 속해 있다. 고향을 떠나지 않았고,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가 강제로 떼어내질지도 모르지만, 그 자신은 떨어지지 않는다. 그는 고향의 일부다. 완전히 속해 있다. 그는 고향을 떠나는 의지를 갖지 않는다. 그리고 누렁이에게 노래하는 이, 노래하는 ‘나’는 낯선 사람으로 보인다. 나는 누구인가?
노래하는 이는 자신도 이 집의 식구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하나의 선언이다. 고향과 집은 다르다(<가> 단락 해명 참조). 그리고 한 식구라는 주장의 논거가 이어진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아침마다’ ‘너-누렁이에게’ ‘밥 주시는’ 분들이다. 이 일상성과 하루의 ‘첫머리’ 즉 우선적 사랑을 베푸는 지점에서 그들이 너-누렁이에게도 우선적일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등가 교환. 그리고 그 베풂은 ‘밥’이다. <밥은 하늘>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민심이 천심(백성의 마음이 하늘의 마음이다)이라는 말의 가장 적절한 변용이다. 밥은 생명을 주기 때문이다. 생명을 잇도록 다른 생명을 주는 것, 그것은 바로 자연이 하는 일이고, 어쩌면 신법(神法)이다.
도덕경에는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으며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는 구절이 있다. ‘그 두 분’이 ‘사랑’을 주는 ‘막내아들’은 그 근친성과 종속성을 가짐으로써 동일한 법(法)을 따른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그 본받음은 아주 내재적인 것이며, ‘밥’과 ‘사랑’은 같다. 그러므로 누렁이와 같음을, 누렁이와 똑같은 처지임을, 같은 존재임을, 같은 위치임을, 그러니까 형제임을 주장하고 있다. 두 분의 막내아들이라는 지위로써 누렁이의 위에 서려는 게 아니라 누렁이의 ‘곁’에 서려 한다. 이 점이 중요하다.
따라서 한 식구는 한 형제, 동기(同氣) 간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같은 기운을 받은. 같은 사랑, 같은 밥 그러므로 한 생명을 나누었다는 결론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