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만들어 낸
출판된 본문⟫ n.215
인간이 만들어 낸 법에 굴복하는 것은
우리들의 지성일 뿐,
결코 우리 안에 살고 있는 영혼이 아닙니다.
원문⟫
It is the mind in us that yields to the laws made by us, but never the spirit in us.
새로 한 번역⟫
우리 안에 깃든 정신은 우리가 만든 법에 속합니다
하지만 우리 안에 깃든 영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읽기글∙1⟫
사전에 mind와 spirit의 쓰임새를 이야기해야겠습니다.
실은 시대와 저자에 따라 두 말은 서로 섞여 쓰입니다.
두 낱말 모두 인간 정신을 가리키지만
본래 영혼까지 아우르던 라틴어 mens에서 유래한 mind가 이후 마음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점점 더 건조한 이성을 가리키는 데 한정되게 사용되는 추세를 가졌다면
spirit은 이에 반해 mens에서 온 mind의 용례가 축소되는 그만큼의 영역을 가져간 측면이 큽니다.
그렇더라도 자주 혼용되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각 작품에서 작품 안에서 어떻게 쓰이는지 살피면서 그 말이 가리키는 바를 한정해야 합니다.
지브란의 경우, mind를 근대적 지성과 연결시키는 경향이 있고
spirit은 신비적인 ‘전체’를 가리키는 경향을 보입니다.
즉, spirit 가운데 일부가 mind이고, mind는 주로 계측 가능한 것을 다루고, 그 자신 계측 가능한 것으로 간주됩니다. mind에게 정신이 아닌 외부가 없다면, spirit의 외부는 정신 아닌 것들로 곧장 연결되기에 spirit이 수용하고 관계 맺는 것에는 정신의 방식으로만 말할 수 없는 것, 그래서 그대로 감각하고 그대로 수용하고 존재하는 대로 마주쳐야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지브란은 감각보다 사유를 높이 치다가도 정신 내부의 사정으로 들어가면
감각,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지성이나 설명가능한 것보다 더 크고 더 본래적인 것이라고 간주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나 이는 모순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이 점을 먼저 말해 두고 싶습니다.
읽기글∙2⟫
굴복, 정복.
영혼들은, 다시 말해 영혼으로서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한 편의 시(詩)인 이 세상에서
진짜 운율을 자아내는 건
자기 자신들이란 걸.
그것이 바로 시(施)라는 걸.
주어져 있음.
바로 그렇게만 주어져 있음.
(주인이 아닌 자들은 정복할 도리밖에 없습니다.
그들이 대체 무슨 수로 무언가를 내어줄 수 있겠습니까?
땅을? 시간을? 영혼을? 존재를?
그들은 주인이 아닙니다.
주인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의 갈증은
소유권과 지배권으로 향합니다.
이것이 이성-인간정신 자체-을 파괴한 지성이라는 착각입니다.)
*덧붙임: 그렇다면 이성은? 이렇게 묻는 분이 있을 수 있겠죠.
나에게 이성이란
‘균형감각’입니다.
인간의 모든 것, 아니 우주의 모든 것을 한데 끌어다 쓸 줄 아는.
이성에는 환상도 희망도, 사랑이나 믿음 같은 것들도
비이성적이지 않습니다.
그런 것들을 부정하는 것이야말로 비이성적인 행동입니다.
이성적이라는 건 합리적이라는 것보다 큽니다.
만일 그것을 합리적으로 재서술하지 못한다해도
세계 자체로 그렇게 실재한다면 모르는 채로인 그것을
함부로 단정하지 않은 채로지만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스푸마토sfumato로 표현한 그 어슴푸레함을 기억하십시오.)
바로 그래서 부정확함을 포함한 그 인식이 가장 정확한 인식인 것입니다.
지성이,
힘이 세다는 이유로
유산을 독차지하려 합니다. 이성 가문의 ‘올바름’이라는 유산을.
그대여, 올바르려 한다면
완전함의 꿈을 버려서도 안 되고,
그 꿈을 이루었다고 허풍 떨기 위해
설명할 수 없는 것, 불완전함을 일으키는 것들을 버려서도 안 됩니다.
그래야 그대가 온전합니다.
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