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읽기(2)-비밀의 화원(4)

하루 하루 조금씩 ~ 민트 향이면 어떨까

by 이제월


[5]

하루 하루 조금씩 나아질 거야

그대가 지켜보니

힘을 내야지 행복해져야지

뒷뜰에 핀 꽃들처럼


이 결정적 태어남이 나를 어제로부터 분리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점의 체험은 다시 선상線上에 펼쳐진다. 굽이치며 도는[旋] 가락은 점이라는 맺힘을 다시 풀어 헤친다. 삶은 흐름이다. 삶의 신비는 한 점에 모을 수 있어도 그것은 시간 속에 서서히 전개된다. 그래서 시작 속에서 우리는 끝을 본다. 사실 끝난 일이다. 이미 완성됐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하루하루 조금씩 나아질 거”다.

이 나아짐은 오직 신비와의 연결 속에 벌어진다. 노래하는 나는 그래서 말한다. “그대가 지켜보니”. 나는 이유를 알고 근원을 알고 원천을 안다. 거기서 힘이 온다. 거기서 삶이 비롯한다. 그 삶은 결정된 것이 아니라 결정하는 것이다. “힘을 내야지 행복해져야지”, 그러니까 나는 행위-한다. 힘을 내기로 결정-한다. 행복해지겠다고 결정한다. 나는 어제 결정되지 않았고, 매 순간, “하루하루” “조금씩” 더 좋은 모습으로 “나아”진다.


여러분은 내 안에 머무시오. 나도 여러분 안에 머물겠습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여러분도 내 안에 머물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요한의 복음서 제15장 4절)


시간 선상에 다 펼쳐지지 않았다고 해서 불확실하고 알 수 없고 불안정한 것이 아니다. 나는 이미 점율로 경험하였고, 다 알고 있다. 나는 내가 힘을 내기로 결정한 것뿐 아니라 그렇게 해서 행복해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 이미 다 이루어진 일이다. 모르는 것을 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눈먼 갈증이 아니다. 그게 오더라도 그게 그것인 줄 모르고, 행복을 찾은 줄 모르고 헤매는 치르치르나 미치르의 모험과 다르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안다. “뒷뜰에 핀 꽃들처럼”. 집 방 안에 파랑새가 있었듯이, 내가 되려는 존재는 내가 분명히 알고 매우 가깝다. 나는 약한 존재인데, 감히 더 약해진다. 한낱 꽃이 되려 한다. 더 약하고 자기를 지킬 수 없고 더 찰나의 수명을 지닌 것, 자기를 말하지 못하는 존재가 되려 한다. 왜? 나는 이미 완성되고 충족됐기 때문이다. 나는 나를 이루려고 발버둥치는 것이 아니라 실현된 나를 선율에 실어 퍼뜨릴 뿐이다. 바람을 타고 날아오른다.

자기 자신인 자는 다른 무엇이 되려 하지 않는다.




[6]

점심을 함께 먹어야지

새로 연 그 가게에서

새 샴푸를 사러 가야지

아침 하늘빛에 민트 향이면 어떨까


나는 그대를 원한다. 그대를 소유하고 그대를 차지하여 그대가 한갓 내 일부가 되게 하려는 게 아니다. 나는 욕망하지 않고 욕망한다. 즉, 내가 욕망하는 그대는 자유롭다. 노래하는 나는 노래할 줄 모르던 나와 다르다. 전에 나는 어리석게도 내가 원하는 누군가를 찾았지만, 올바르게도 그대를 만나고부터, 그대가 나를 받아주어 내가 그대와 결합하고부터는 그대가 완벽에 반하는 어떤 모습일지라도 완벽하게 포옹한다. 그러므로 나는 그대와 나, 이 온전한 ‘그대-나’ 존재를 그대와 “함께” 누릴 뿐이다. 그것은 우리의 양식이다. 몽롱한 꿈이나 허기진 바람 속에서가 아니다. 나는 충만한 채로, 결핍 없이, 곧 다른 무언가를 ‘대신’하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충만하고 더 바랄 것 없는 채로, 순수하게 그대 자신을 초대한다. 그리고 우리는 “점심을 함께 먹”는다. 이것이 노래하는 내 마음이다.

세계는 새로워졌다. 그러므로 삶이 모든 것을 얻는 삶의 터, 세계, 시공간인 우주는 “새로 연 그 가게”이다. 다름 아닌 “그” 가게이다. 하나뿐인 곳이다.

그리고 나는 기꺼이 나를 새로 꾸민다. 전처럼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다.

“새 샴푸를 사러 가야지”. 그 샴푸가 “아침 하늘빛에 민트향이면 어떨까”? 샴푸는 그 빛깔과 향기를 고스란히 전시하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누리는 것이고 내게 가까이 다가오는 이들이 느낀다. 그러나 그때에도 내가 ‘샴푸’를 느끼던 것과 달리 ‘나’를 거치고(per), 내 안에서(in) 나온 것들과 어울려 함께(cum) 전달된다. 나는 가면을 쓰고 옷을 입어 나는 가리고 그것은 드러내 전시하는 게 아니다. 나는 온전히 나를 새롭게 하고, 순수하게 기쁜 나를 꾸밈없이 나누는 것이다. 내 기쁨을 퍼뜨린다.

그러므로 내 노래는 옷이나 다른 장신구, 다른 기능이 아니라 ‘새 샴푸’를 사겠다고 노래한다. 나는 그저 나를 위해 그것을 소모한다. 그럼으로써 나는 다시 태어난 나를 세례한다. “아침하늘빛”이면 좋겠고, “민트향”이면 어떻겠는가?

점심을 함께 먹으려면 그대도 남에게 보이려는 공부는 멈추고 스스로를 돌보시라. 그러면 우리는 ‘새로 연 세상’에서 만나, 소유 곧 약탈과 거래 없이 서로의 존재를 ‘먹을’ 것이다. 그것은 그림의 떡이 아니다. 비로소 그대는 참음식을 먹고 참물을 마시어 배 부르고, 힘이 솟고,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줄 물을 마시는 이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줄 물은 오히려 그 사람 안에서 샘이 되고 그 물은 솟아올라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입니다."

(요한의 복음서 제4장 14절)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생명의 빵입니다. 내게로 오는 이는 결코 굶주리지 않을 것이고, 나를 믿는 이는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의 복음서 제6장 3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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