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읽기(2)-비밀의 화원(6)

월요일도 화요일도 ~ 행복해 줘 나를 위해서

by 이제월


[8]

월요일도 화요일도 봄에도

겨울에도 해가 질 무렵에도

비둘기를 안은 아이 같이

행복해 줘 나를 위해서


시간의 시작과 끝, 언제라도. 그러나 영원을 주워 섬기지 않는다. 대신에 좋을 때나 나쁠 때나, 따뜻할 때나 차가울 때나 가리지 않는다. 모든 현재를 기꺼이 바친다. 노래하는 나는 더는 나를 위해 빌지 않는다. 약하고 부족한 것 많은 내게 필요한 것들을 떠올려 바라지 않는다. 대신에 나는 비로소 “나를 위해서” 필요한 것을 바란다. 전에는 욕망wants에 휘둘렸지만, 이제는 이윽고 필요needs를 깨달아 바란다. 마땅한 것을 바라는 것이어서 이 욕欲은 신성한 의무이고, 해야 할 바이다. 이 욕은 저 욕慾과 다르다. 내 마음을 비우고 또 비워도 내 마음에 남은 게 하나 없고, 건질 게 하나 없어도 내 마음이 바라는 바란, 마음 없는 데서 바라는 바는 내 뿌리요, 내 처음이요, 내 고향이요, 다시 만나고 돌아갈 고향, 참나의 자리이다. 그러니 바라는 마음을 지우면 참으로 바랄 것을 바라고 알아차리게 된다. 나는 바란다. “행복해 줘 나를 위해서”.

나는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때가 좋거나 나쁘거나 가리지 않고 오직 그대가, 세계 자체가 온통 “비둘기를 안은 아이 같이” “행복해 주”기를 바란다. 나는 안다. 그것만이 “나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그것만이 다 비운 내가, 비로소 진심에 이른 내가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이제 기도는 참되다. 기도는 나이고, 기도는 내가 정말 행하는 바이고, 기도는 정말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이다.


“너희가 악하면서도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구하는 사람에게 더 좋은 것 곧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루카복음서 제11장 13절)


비둘기는 양순良順하다. 비둘기를 안은 아이는 안긴 것이 편안하니 절로 편안하며, 안은 것이 편안한 성품이니 온마음과 온몸으로 편안함을 지킨다[시중時中]. 살아 있는 균형이다. 어느 때이건 평안하다. 비둘기를 안은 아이는 安心을 얻은 아이거니와, 앞서 노래하는 내가 줄곧 그대라 부른 세계의 평화를 빈다. 세계가 평화롭도록 비둘기, 약하고 여린 생명을 언제나 안고 있기를 바란다. 세계로 하여금 할 일이 ‘살림’이라고, 죽임과 멀어지도록 독려한다. 먹고 먹임은 자연한 고리요, 태어나고 죽음은 자연한 순환이나 죽임은 없이 하고 살림은 북돋우는 것이 자연이고 세계이다. 노래하는 나는 에오라지 세상이 저답기를 바랄 뿐이다.


천지불인天地不仁, 이만물위추구以萬物爲芻狗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 제5장)


천지는 치우치는 사랑을 하지 않아, 만물을 똑같이 지푸라기 인형처럼 여긴다. 마치 한 번 쓰고 버릴 것인 양 아끼지 않고 아까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고 다 저를 이루며 살아가게 둔다. 천지가 불인해야 천지를 만나서 사람이 피어난다. 만물이 피어난다. 천지를 보고서야 원하는 것들에 사로잡히는 대신 저 스스로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알고 보고 느끼어 바랄 수 있다.



군자이부다익과君子以裒多益寡 칭물평시稱物平施

(지산겸地山謙)




천지도손유여이보부족天之道損有餘而補不足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 제77장)



주역周易의 64괘 중에서도 최고로 치는 것이 제15괘 지산겸이다. 지산은 땅 속에 산이 들어간 형상을 가리킨 것으로 땅 속에 산을 숨기듯 겸손하라는 말이다. 계사전繫辭傳은 겸을 “덕을 쥐는 자루”[謙 德之柄也]라고 하며, 만일 겸손하지 않으면 빛나는 덕德과 아름다운 예禮가 이루어질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런데 겸손이란 건 그저 몸을 낮추고 나는 별 거 아닙니다, 하며 말로만 작아지는 것이 아니다. 그 마음이 정말로 겸손하다면 부지런한데, 무엇에 부지런한가? 군자는 많은 것을 덜어다 모자란 데 채운다는 것이다. 그것이 마치 저울로 재는 것 같다고 하였다. 천지가 불인한 것과 같다.

그리하여 노자 도덕경도 천지의 도에 관해 다시 이야기한다. 하늘의 도는 남는 데서 덜어다 모자란 데를 기우는 데 쓴다고 한다. 천지가 불인한 것은 사랑이 없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사랑, 세계 안에서 낱낱이 분리하여서 나남을 가르는 자들, 그럼으로써 나와 너, 그 사이에 가깝고 먼 거리가 생긴 자들의 흉내 낸 사랑, 불완전하고 자꾸 오류에 빠지는 사랑과 다르다. 참사랑은 우리를 뛰어넘는다. 참사랑은 우리가 갖거나 우리가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쏟아져 내리며, 우리가 사랑하는 게 아니라 사랑이 우리 사이에 머무는 것이다.

이 사랑에는 거리가 없다. 사람이 이 사랑을 안으면 대자대비大慈大悲, 크게 너그럽고 크게 슬프다. 아프기 짝이 없는 사랑이며 기쁘기 짝이 없는 사랑이다. 엄정하기가 온통 진리뿐인 꽃찬(화엄華嚴) 세계와 같다. 세계의 눈을 갖는 것, 곧 천지공심天地公心을 얻는 것이 사랑에 빠진 자의 유일한 특권이다. 그는, 하늘사람[천자天子]은 비로소 하늘과 더불어 셋을 이룬다[여천지삼與天地參](『예기禮記』, 「경해經解」편). 『중용中庸』에도 온 세상에서 오직 지극히 정성스러운 자[유천하지성唯天下至誠]가 하늘땅과 더불어 비로소 셋을 이룰 수 있다[가이여천지삼의可以與天地參矣]고 하였다. 천지인. 세상을 이루는 세 재료[삼재三才]는 아무렇게나 되는 게 아니다. 말하는 동물이라고 모두 다 사람이 아니고, 사람이 아니어도 사람보다 나을 수 있다. 참사람은 하늘과 땅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자연스럽다. 그런 사람이 세상, 우주의 재료다. 생각으로, 가장 파편화되고 작아진 그는, 가장 작고 낮아진 채로 세상과 참형제다, 참된 이웃이다. 그런 그이는 그대, 하늘을 본다.

그런 그이가 아니고서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




*** 여기 인용한 성경은 전부 『200주년신약성서』(분도출판사, 2001년)를 따랐으나, 이 인용문만큼은 『성경』(한국천주교주교회의, 2014년)을 따랐다.


******* 신동엽 시인의 시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의 일절一節. 전문은 이러하다: 아래.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네가 본 건, 먹구름/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네가 본건, 지붕 덮은/쇠항아리,/그걸 하늘로 알고/일생을 살아갔다.//

닦아라, 사람들아/네 마음속 구름/찢어라, 사람들아,/네 머리 덮은 쇠항아리.//아침 저녁/네 마음속 구름을 닦고/티없이 맑은 영원의 하늘/볼 수 있는 사람은/외경을/알리라//

아침 저녁/네 머리 위 쇠항아릴 찢고/티 없이 맑은 구원의 하늘/마실 수 있는 사람은//

연민을/알리라/차마 삼가서/발걸음도 조심/마음 조아리며.//

서럽게/아 엄숙한 세상을/서럽게/눈물 흘려//

살아가리라/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누가 구름 한 자락 없이 맑은/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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