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 물거품 같이 읽기-이백쉰한 번째날

이해심이 깊은

by 이제월





출판된 본문⟫ n.249

이해심이 깊은 사람들은

그 이해를 내 덕으로 돌리고,

미련한 사람들은

그 우둔함을 내 탓으로 돌립니다.

나는 두 유형의 사람들이 모두 옳다고 생각합니다.




원문⟫

The understanding attributes to me understanding and the dull, dullness. I think they are both right.





새로 한 번역⟫

아는 사람은 이해를 내 덕으로 돌리고

모르는 사람은 어리석음을 내 탓으로 돌립니다

내가 생각하기로 그들은 둘 다 옳습니다



읽기글⟫

여기서의 ‘나’는 독자가 아니라 화자(話者)입니다.

칼릴로 여겨도 좋고, 그냥 작품을 위한 가상의 화자로 보아도 좋습니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이 화자는

독자 가운데 누구라도 될 수 있습니다.


님들은 자신을 대하는 두 유형의 사람들을

모두 옳다고 여기시는지요?

부디 그러십시오.

그러고 나면

우리에겐 맞서고 싸울 일이 있을지언정, ‘화’날 일은 없으니까요.


아, 그리고 한 가지

잊을 뻔 했군요. 가장 중요한 겁니다.

두 유형의 사람들이 서로 모순되는 것보다 더 크게

둘 다 옳다고 하는 내가 더 모순된 것처럼 보일 테지요?

둘 다 가능한 건

둘 다 괜찮을 만큼 내가 커서입니다.

하나의 행성에는 극지와 적도가 둘 다 존재하며, 심지어 극지는 둘이나 됩니다.


나는 약자라는 환상에 사로잡히지 않습니다.

정말 약자라면 어떤 존엄도 주장하지 마십시오.

강자이고 존엄할 때,

약자로 만드는 불의에 항거하고 연대를 호소할 수 있는 겁니다.


내가 부서지고 짓밟힐 때

내가 강하다는 것을 잊지 않습니다. 이 순간만큼은

온 우주가 달려들어도 이 한 점을 소멸할 수 없습니다.

도리어 우주가 그 안에서 소멸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을 존중하는 것,

가장 약하게 취급되는 ‘빼앗긴’ 자들을 맞이하여 주(主)로 섬기는 것에는

세상을 구하는 단순한 비결이 깃들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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