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 물거품 같이 읽기-이백예순네 번째날

거북이는 토끼보다

by 이제월








출판된 본문⟫ n.262

거북이는 토끼보다

길에 대하여

할 이야기가 많습니다.




원문⟫

Turtles can tell more about roads than hares.





새로 한 번역⟫

거북이들이 산토끼들보다 길에 대해 더

많이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읽기글⟫

속도에 대해 흠을 잡으려 들면,

나를 욕할 사람이 많습니다. “너는 속도의 수혜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이제 움츠러들지 않습니다.

나는 현실적으로나 잠재적으로 속도의 피해자이기도 합니다.

인간이 자연의 속도를 부리게 되었을 때

마차는 그렇게까지 위험하진 않았습니다.

물론 그때에도 말이나 마차는 그것을 갖지 않은 사람들이 밀집한 곳에서

위험한 속도를 내장했습니다.


인간이 기계적 속도를 쟁취했을 때

우리는 전쟁이 더 빠른 속도로 더 많은 것을 앗아갈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전쟁이 아니라도 속도의 발생은 ‘사고’‘사건’을 발생시켰습니다.

비행선이 뜨자 비행선 폭파사고가 시작됐고,

기차가 달리자 열차사고가 시작됐으며,

전기가 돌자, 감전사고가 시작됐습니다.


이제는 기계적 속도까지 넘어서서 물리적 극한의 속도-핵의 시대가 왔습니다.

인간이 핵을 쓰는 원리는 그것이 발전소에 쓰이든 폭발무기에 쓰이든

핵의 융합과 분열 속도를 왜곡하는 것으로서 원자를 파괴하는 행위입니다.

나는 핵폭발이나 방사능에 의한 폐해를 진심으로 이렇게 느낍니다: 공포와 슬픔.

약간의 원자가 겪는 이 가공할 내파(內波)는 자연히 원자 단위의 다른 존재들의 슬픔과 공포를 야기하고

이것은 방사능병 등으로 불리는 외파(外破)에 앞서

이미 벌어진 내파의 내비침일 뿐입니다.

방사선 치료가 가져온 획기적 기여를 이야기할 수 있지만, 나는 내 논리를 굽히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누군가 다른 누군가를 위해 목숨을 내놓는 일, 그럴 수 있나, 그럴 만한가,와 같이

‘희생’의 가치에 대한 물음으로 넘어가야지,

원자의 파괴라는 죽임의 행위 자체를 뒤덮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살신성인(殺身成仁)이라 하였는데, 우리는 그보다는 말초적 만족과 편리를 위해

많은 파괴적 속도를 개발해왔습니다.


거북이 못지 않게 토끼도 길에 대해 할 말이 많을 지도 모릅니다.....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천천히 보아야만 보이는 것이 있다는 것을.

우리의 매일에 벌어지는 사랑과 이별은 이런 사실을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속도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발견하는 순간이

우리 삶을 구조하는 출발일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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