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 물거품 같이 읽기-이백예순여섯 번째날

지렁이도 밟으면

by 이제월







출판된 본문⟫ n.264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립니다.

하물며 커다란 코끼리가 항복한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원문⟫

Worms will turn; but is it not strange that even elephants will yield?







새로 한 번역⟫

벌레도 몸을 비틉니다

하지만 코끼리조차 포기하고 몸을 내맡긴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읽기글∙1⟫

푸른 영상 김동원 감독님이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송환>을 본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고문과 세월을 견뎌온 비전향장기수들은

너무나도 가혹한 고문이 오히려 그것을 견디게 했다고 말합니다.

거기서 지면, 비인간적 대우에 지는 것이고, 그래서 스스로 인간이길 포기하는 것이라는 걸,

적어도 그렇게 느끼게 될 거란 걸 무의식중에 알았던 것이겠지요.


우리는 코끼리의 덩치는 고려해도

보이지 않는 인간의 ‘가치’는 종종 잊는 것 같습니다.


사랑하거나, 무언가를 깊이 믿고 갈망할 때

우리는 “뼈에 사무친다”는 말을 씁니다.

인간은 척추를 가진 동물입니다.

우리는 우리네 척추에 스며든 가치와 신념, 사랑 같은 것들을 보다 올바로 대접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읽기글∙2⟫

우리를 잘못 대접하는 것은 대개

다른 누구, 외부의 타자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곤 합니다. 가장 완강하고 가장 유구하게.

때때로 불신과 무례가 우리의 종적 특성이 아닐까 의심하리만치.

그리하여 우리만이 따로 교육을 시스템으로 만들려 애쓴 게 아닐까,

교육은 더 나아지기 위한 게 아니라 멸망을 막기 위한 방어선은 아닐까 하고 묻게 됩니다.

물론 <송환>이 그려낸 지옥도 역시 많이 배운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진정한 교육은 배울 만한 걸 가진 사람과 배울 만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마침 문을 열고 만날 때에야 이루어집니다. 학교가 배움의 산실이 아닙니다. 얼마나 많은 언어에서 ‘학교’란 장소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단어인지 아십니까? 그 언어들이 비주류 세계의 것이란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우리가 다가서지 못하는 세계는 아니며, 심지어 우리가 상상력을 발휘하고 논리를 차분히 전개한다면 어디에도 없어도 우리 스스로 길어내고 피워 올릴 수 있습니다.

명실상부.

그럴 수 없다면 속 빈 강정 대신

겉은 어수룩해도 속은 알찬 쪽을 택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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