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 물거품 같이 읽기-첫째날

어제야 비로소 나 자신

by 이제월

여러 해 전 Daum 카페 '칼릴마을'을 만들고 운영하면서

처음으로 '같이 읽기'라는 말을 썼습니다.

그때 같이 읽기는 한편 카페의 모람들과 함께 읽는다는 뜻과,

또 한편 칼릴 지브란의 글과 더불어 나란히 읽을 거리를 함께 써 부친다는 뜻을 지녔습니다.

'cum'(함께)

그때 이십 대에 쓴 글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이십 대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이 다시 씁니다.

그리고

'in' (안에서)

'per' (통하여)

두 성격도 조금 더 보태보려 합니다.


대본이 되는 [[모래·물거품]]은

정은하 님이 번역하고 진선출판사가 1989년 4월 1일 출간한 초판을 따옵니다.

제가 확인한 바로는 2017년에 새로 나온 판도 1989년 초판과 동일합니다.

하나씩 재확인하며 옮길 때 차이가 나는 경우를 발견하면 1989년판을 따를 것입니다.

정은하 님이 수행한 번역이 너무도 아름답고 뜻을 잘 살렸다고 생각하지만

때때로 저 나름의 번역을 병행할 것입니다.

전문 번역가가 아니고 모자란 부분은 의역을 할 테지만

원문과 더불어 새로 한 번역까지 세 개의 본문을 읽으며

읽는이가 스스로 칼릴이 한 말-너머를 헤아리는 데 어쩌면, 작은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여 보탭니다.


<모래·물거품>은 317개의 단상으로 구성됩니다.

원문에서는 문장들이 줄을 바꿀 뿐 번호를 매기거나 단락을 띄워 구분하지 않은 채 이어지지만,

정은하 님이 번역하고 진선출판사가 간행할 때 단락 구분한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출간된 책에서는 표시하지 않는 번호를 제가 매겼습니다.

같이 읽기와 찾아보기의 편리를 위해서 임의로 한 것입니다.

아무튼


그것들은 세포처럼 각기 독립적이면서도

전체가 하나의 유기적인 생명체로 묶인 듯 합니다.

때문에 어디서부터 다가서도 좋지만 우선은 그 첫 조각에서 시작해 보겠습니다.

처음 카페 회원들에게 전체메일을 발송하는 방식으로 나눌 때

중간에 하나를 빠뜨리고 넘어가서 316개만을 다루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나눈 '읽기글'과 지금 새로 쓰는 '읽기글'은, 그것이 토씨 하나까지 같을 때조차, 같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같습니다.


이 자리를 통해 처음 보는 분이건, 다시 보는 분이건

새롭기를 바랍니다.



출판된 본문》 n.1

어제야 비로소 나 자신,

생명의 우주 속에서 불규칙하게 떨고 있는

한 조각임을 알았습니다.


오늘 나는 내 자신이 바로 그 우주라는 것,

율동적인 조각들로 이루어진 모든 생명은

이제 내 안에서

고동치고 있음을 압니다.


원문》

It was but yesterday I thought myself a fragment quivering without rhythm in the sphere of life. Now I know that I am the sphere, and all life in me.


새로 한 번역》

어제서야 나는 생각했습니다

생명의 천구(天球) 속에서 나

리듬 없이 흔들리는 한 조각이라고


이제 나는 압니다

내가 그 천구이고, 온 생명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읽기글》

깨달음은 두 개의 길을 갖습니다.

하나는 자신의 '작음'을 발견하는 것.

다른 하나는 자신의 '커다람'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첫째 길을 지날 때 우리는 모든 것이 지닌 위대함을 느끼고

자기애의 좁은 틀을 벗게 되며,

둘째 길을 지나면서 우리는 그것들을 사랑하는 가운데

사랑하는 자신이 품고 있는 위대함을 깨닫고

가난하지만 책임질 수 있는 용기를 싹틔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