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잠에서 깨어나
출판된 본문⟫ n.2
사람들은 잠에서 깨어나 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와 네가 살고 있는 세계는
무한한 바다 그 끝없는 해안에 뒹구는
모래 알갱이 하나에 불과하다.”
그러면 나는 꿈속에서 그들에게 대답합니다.
“내 자신이 바로 그 무한의 바다.
그리고 모든 세상은 나의 해변에 뒹구는
모래 알갱이일 뿐이다.”
원문⟫
They say to me in their awakening, "You and the world you live in are but a grain of sand upon the infinite shore of an infinite sea.”
And in my dream I say to them, "I am the infinite sea, and all worlds are but grains of sand upon my shore."
새로 한 번역⟫
사람들은 그들의 깨어남 속에서 내게 말합니다
“너와 네가 사는 세계는
무한한 바다의 무한한 해안에 놓인
모래 한 톨에 지나지 않아”
그러면 나
꿈속에서 사람들에게 말하네
“나는 무한한 바다,
모든 세계가 나의 해변
그 위의 모래 한 톨이라네”
읽기글⟫
첫째날 같이 읽기에서 본 것과 비슷한 준비가 아닐까요?
비록 이 작품이 어디서부터 시작해도 좋은 아포리즘이기는 하지만
지브란은 의도적이거나 혹은 의도적이지 않거나 별나게도 그 순서상
마음의 귀를 차츰차츰 유연해지도록 이끄는 것만 같습니다.
첫째날 읽기에서 정확히 지적한 바와 같이
‘나’는 우주 속의 존재일 뿐 아니라 우주 전체를 안은 ‘우주’ 자신이기도 합니다.
지브란은 두 번째 본문에서도 마찬가지로 이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둘째 단락에서 ‘나’라는 것은 비단 지브란 자신을 가리키는 것일 뿐 아니라
지브란의 깨달음에 동참하는, 동의하는 모두에게 해당하는 것입니다.
히포의 주교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 of Hippo)는
“사람은 그가 무엇을 아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사랑하느냐에 의해 평가되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과거로부터가 아니라 미래에 던[져]짐으로써
누구라고, 무엇이라고 이야기되어야 한다는 뜻일 겁니다.
우리가 저 깨달음을 속속들이 다 알기 전이라도 이미
우리가 저 깨달음을 받아들여 내맡길 때
우리는 깨달은 그와 같은 배에 탑니다.
우리는 같은 이름 속에 불리웁니다.
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