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 물거품 같이 읽기-이백여든네 번째날

신은 자비로운

by 이제월





출판된 본문⟫ n.282

신은 자비로운 갈증으로

우리 모두를 마셔 버립니다.

우리 눈물과 이슬 방울까지도.




원문⟫

Our God in His gracious thirst will drunk us all, the dewdrop and the tear.





새로 한 번역⟫

우리 하느님은 당신의 자비로운 갈증으로

우리 모두를, 콧물과 눈물까지 싹 다, 마셔 버렸을 것입니다





읽기글∙1⟫

나는 언젠가 ‘자비로운 갈증’이란 이름의 책을 쓰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 책이 나오기 전

책을 쓸 이유가 사라진다면 더 좋겠습니다.



읽기글∙2⟫

그가 우리를 마셔버리지 않았다면

어떻게 우리가, 이 세상이

여지껏 남아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사람들은 자주 불공정한 신을 흠잡고,

마침내 신은 죽었다고 탄핵하길 서슴치 않습니다.

그러나 신은 그의 백성 가운데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가 먼저 있었고, 백성이 그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우리는 그를 물리칠 권한이 없습니다.


더욱이 신은 우리를 꽤 정당하게 대하고 있습니다.



네, 그는 우리를 공정하게 대하지는 않습니다.

만일 그가 공정했더라면 우리 가운데 몇 명이나 남아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우리의 본래적인 처지—유한하고 비참한[부처가 갈파한 대로 고해(苦海)에 빠진!]—에 맞게

우리를 대하고 있습니다.


(임의의 구분이라 여길 수도 있겠지만),

공정하다는 건 비교할 때의 올바름이고

정당하다는 건 여하한 비교를 떠난 절대적인 올바름을 가리킵니다. 그것은 오직 규범에 대해서만 자신을 고발당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상대자이기 때문에 관계속에서 자신과 서로를 파악하고

이 때문에 그에게 공정함이란 최소한의 덕률(德律)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마저도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은-그가 존재하는 한- 절대자이기 때문에 그 자신 규범으로서

모두에게 정당하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인간의 선(善)은 예컨대 도덕적이고, 윤리적이며

인간의 정의는 공정함이며 선행과 악행에 대해 행동의 열매를 임의로 돌려주는 것이라면,


신의 선함은 도덕적인 차원을 넘어서 존재와 결부된 것으로서

그의 정의는 공정함을 넘어선, 저 ‘자비로운 갈증’이라고 믿습니다.

사실 그것 말고는 그와 관련한 다른 가능성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신의 정의, 신의 선함은

낮동안 태양이 비추는 것과 같습니다.

태양은 어디에나 비춥니다.

궂은 날 비가 내리는 것과 같습니다.

비는 가리지 않고 온땅을 적십니다.


이것이 예수의 사상이고,

이것이 부처가 가섭존자에게 자기 깨달음을 전한 방식입니다.

부처가 단지 미소를 띤 제자를 인증했음을 잊지 마십시오.

그대가 심판자인 동안

신은 그대에게 미소짓지 않을 겁니다.

심판자의 눈에는 그런 게 띄지 않으니까요.



규정하지 않고 선을 누리기.

그것은 먼저 판단을 비우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아 보여도

감사하기는 가장 적극적이고

무한히 많은 힘을 쓰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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