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 물거품 같이 읽기-삼백열다섯 번째날

유다에 대한

by 이제월










출판된 본문⟫ n.313

유다에 대한 그 어머니의 사랑이

예수에 대한 마리아의 사랑만 못한 것이었습니까?




원문⟫

Was the love of Judas’ mother of her son less than the love of Mary for Jesus?






새로 한 번역⟫

자기 아들을 향한 유다의 어머니의 사랑이

예수에 대한 마리아의 사랑보다 덜했겠습니까?




읽기글⟫

우리는 ‘모른다’고 말함으로써 혼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질문에서 벗어나면

우리 삶이 혼란에 빠지고

우리가 겪는 혼동과 혼동에 따른 틀린 행동들은

결국 세계를 혼란에 빠뜨립니다.


그러면 우리는 ‘안다'고 말할까요?

그러기에는 유다의 어머니가 아이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아니, 사랑하기는 했는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타임머신이라도 타야 할까요?

일단 그걸 만들 수는 있습니까?

만들어서 간다고 한들 사랑의 크기를 잴 수단을 아십니까?


모른다고 말하면 안 되고

안다고 말하자니 알 도리가 없으니 진퇴양난이군요.


그러나 다행히 우리는, 이제 비로소

이러한 물음들의 진의를 압니다.

어둠 속 그림자에 놀라 달아나기 바쁜 아이처럼

정신을 잃지 마십시오.

당신과 나는

바로 이 질문에 답하고자 여기까지 달려왔습니다.

칼릴이 마지막에 놓아 두었고(원서 307번 조각글),

한국어판은 마지막에서 둘째 자리에 놓아 둔 말은(번역서 316번 조각글)

이 해방(원서 307번; 한국어판 316번 참조)과 이 축복(원서 306번; 한국어판 317번 참조)을 위한 것입니다.


모든 올바른 질문은 경험에 기대어 수렴하는 귀납의 논리에 서지 않고

원리와 그 확산에 기대는 연역의 논리를 따라 태어나고 저뭅니다.

답도 따라서 연역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대여, 아이의 훌륭함에서

어머니의 사랑을 재는 일은

언제나 틀립니다.


똑같이 꿈을 이루지 못한 이의 꿈의 크기를

꿈을 이루어낸 이의 꿈의 크기보다 작다고 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그런 것은 알지 못합니다.

모든 드러난 것은 감추어진 것의 수천 수만 분의 일도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무한과 영 양편으로 갈라져 흩어집니다.

우리는 결과에 상관없이 올바르게 생각하고

올바르게 행동합니다.

올바르게 대합니다.


상대가 인간이어서가 아니라 내가 인간이어서 인간적으로 대합니다.

처지가 좋아서나 나빠서가 아니라 내가 사람이어서 사람답게 살고, 사람으로 죽습니다.


당신이 태어난 것, 이렇게 벌써 일어나 버린 일은 당신의 선택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확인할 수 없으니까요.

그러나 당신이 살다가 죽는 것은, 당신이 선택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아니라고 강변할 때에도.


판단하지 마라거나 비교하지 말라는 말은

당신이 재고 계산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 일은 영영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은 자유롭습니다.

당신이 결정하십시오.


바로 여기에서 우리의 품위며

변론이 비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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