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도록 나는 이집트 사막의
출판된 본문⟫ n.17
오래도록 나는 이집트 사막의 먼지 속에 누워 있었습니다.
소리 없이, 계절의 바뀜도 모르는 채.
그 때 태양이 내게 생명을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일어서서 나일 강둑을 따라 걸었습니다.
낮과 함께 노래하고 밤과 함께 꿈을 꾸며.
이제
태양은 그 수 천의 발로 나를 짓밟아
다시 이집트의 먼지 속에 묻어 버리려 합니다.
그러나
이 놀라운 수수께끼를 보십시오.
나를 거두어 내게 생명을 주었던 바로 그 태양이
나를 다시 짓밟아 흩뜨려 버릴 수 없음을.
아직도 나는 곧게 서서
나의 두 발이
나일 강둑 위를 걷고 있음을
분명하게 느낍니다.
원문⟫
Long did I lie in the dust of Egypt, silent and unaware of the seasons.
Then the sun gave me birth, and I lose and walked upon the banks of the Nile,
Singing with the days and dreaming with the nights.
And now the sun threads upon me with a thousand feet that I may lie again in the dust of Egypt.
But behold a marvel and a riddle!
The very sun that gathered me cannot scatter me.
Sill erect am I, and sure of foot do I walk upon the banks of the Nile.
새로 한 번역⟫
오래도록 이집트의 먼지 속에 누워 있었습니다,
침묵하고, 철이 바뀌는 것도 알지 못한 채
그리고 태양이 나를 태어나게 하였고, 나는
일어서고 걸었습니다
나일 강 기슭을.
노래하는 낮과 꿈꾸는 밤이어라
그리고 이제 태양이 천 개의 발로 나를 갊아들이고
아마도 나는 다시 이집트의 먼지 속에 눕혀질 것입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이 경이와 수수께끼를!
나를 모아들인 참 태양이 나를 흩어 버릴 수는 없음을
여전히 곧게 선 이가 나이며, 틀림없이 나는
나일 강 기슭 위로 걷고 있습니다
읽기글-1⟫
이것은 경험의 문제입니다.
지적 지성이 타는 간접성은 효율적이고
대개 그 변경이 측량하기 어려울만치 넓고
또 넓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는 떠돌고 가없이 흩어져 온 누리로 퍼지는 지성보다
여리고 민감하게 집약된, 혹은 가두어진 한낱 ‘몸’으로
부대껴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들 중 하나가 ‘불멸’입니다.
⏤아직 그대 안에는 유한과 무한이 겨루고 있습니다. 꿈을 꾸십시오.
읽기글-2⟫
지브란에 대한 어떤 평가들은
그를 진화론과 비교합니다.
그 비교는 지브란이 간직한, 다윈과는 다른 시인다운 진화의 이념을 무시하지 않으면서
그것이 간직한 인류의 지적 유산을 지적합니다.
그것들을 직접 찾아 공부할 필요는 없겠지만
한 가지 같이 이야기해도 좋을 것입니다.
지브란을 따라 읽으면 진화 속에 하나의 ‘특이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계절이 바뀌는 줄도 모르는 채 누워 있던 먼지는
태양에 의해 생명을 얻습니다.
그리하여 그-먼지는 나일 강둑을, 문명과 고대(시간적으로 보다는 인간의 근원이라는 뜻으로)를 거닙니다.
그러나 그-먼지는 자신에게 생명을 준 태양에 의해 생명의 반납을 명 받습니다.
그리고 그-먼지(또한 그녀-먼지)는 태양에 의해 파괴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수수께끼입니다만
‘분명하게 느끼’는 데에야 더 할 말이 있습니까?
…창조라는 특이점.
우리 모두는 물리적으로 태어날 뿐 아니라
영적으로(spiritual) 태어납니다.
그런데 그 태어남을 일으킨 것들은 대개
깨어난 순간 이미 우리 자신을 속박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종교이든, 철학이든, 어떠한 관계이든.
따라서 이미 우리를 해방시킨 것들에게 스스로 귀속시켜
우리의 해방자들을 ‘우상’으로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은 우리의 영웅일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우리의 친구 영웅이거나
혹은 우리가 따로 고마워할 필요가 없는 자들
⏤왜냐하면 그들은 기꺼이
자기 즐거움으로 그렇게 했으니. 또는 우리로 해 깨어났으니까요, 마치 알라딘 램프 속의 거인처럼⏤
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들을 우상으로 삼아
스스로 자유라는 무한한 성장, 성숙의 여정을 포기할 때
한때 우리에게 생명을 준 것들은
우리를 파괴하려 달려들 것이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다시 생명을 찾아 달아날 수 있도록.
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