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 물거품 같이 읽기-열여덟 번째날

기억은 만남의

by 이제월


출판된 본문⟫ n.18

기억은

만남의 또 다른 형태,

망각은

자유의 한 형태입니다.


원문⟫

Remembrance is a form of meeting.

Forgetfulness is a form of freedom.


새로 한 번역⟫

기억은 만남의 한 형식입니다

망각은 자유의 한 형식입니다


읽기글-1⟫

*형태라는 말보다 형식이라는 말을 골랐습니다.

겉모습이나 감각되는 사물이 아니라

속에서 줄기차게 자신을 주장하고 규정하는, 자기를 감추고 드러내고, 부수고 다시 만드는

그런 엄정하게 지켜지는 것을 가리킨다고 여겨서입니다.


기억과 망각은 시공간에 대한 우리의

반란입니다.

때로 어떤 기억은 다른 이의 진행중인 현실보다 더 생생하고 정확하며

어떤 망각은

다른 이의 수천 수만의 저항과 해체보다

더 많이 세상을 바꿉니다.


이들은 여럿중 그저 한 형태이지만

분명 특기할 만한 이유는

인간이 몸을 가진 채로도 그러할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두려워 마십시오.

당신은 죽지 않았고

모든 우정은 영원토록 유효하며

그리고 당신은 언제고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원죄(源罪)와 그 죄의식에서까지.



읽기글-2⟫

인식론적으로 볼 때 기억의 상(image)은 실상(reality)보다 더 정교하고 정확하고 온전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우리의 눈이 누군가를 바라볼 때

거기에는 무수한 착시의 가능성은 물론이거니와

종종 채 알아채지 못하고 넘어가는 점이나 잡티, 표정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통상 기억된 상은

언제나 입체적으로 시간에 구애됨없이 그 전체를 관망하고 재조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다시피 ‘인식’이란 인간의 수다한 작용중 하나일 뿐입니다.

인간은 인식 이상의 삶을 삽니다.

그 삶이란 것은 역동성에 대해 역동성으로 관계합니다.


누가 나를 사랑한다 말하지 않아도

그 사랑을 알고

정의하거나 규명하지 않고도, 어떠한 진술 없이도

우리의 몸짓과 활개가 다시금 사랑을 전해보내듯이.


인식은 지성에 관계합니다.


지브란은 그래서 기억을 만남의 한 형태로 분명히 인정하면서도

망각을 자유의 한 형태라고 덧붙임으로써

우리가 가질 수 있는 나태와 안주의 환상으로부터

우리를 붙들어 내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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