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ll: A Tarot Story. 15

악마? 이원성. 세 번의 시작에 관하여

by 이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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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이원성

악마(惡魔)는 이름처럼 악할까? 타로카드의 열다섯 번째 메이저 아르카나이며, 세 번째 층의 첫 아르카나는 The Devil, 악마이다. 신성한 힘이 타자를 허용하지 않을 때, 그리하여 용서와 자비, 그런데 ‘하나’만 있을 때, ‘하나됨’만이 길일 때, 혹은 부득이하게 그런 법이기에 신성은 하나의 원리이다. 하나에서 비롯해야 하나의 세계인 탓에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하나와 부딪친다. 아니, 인식은 둘에 이르러 멈추더라도 둘이 마주치는 장(場), 마당은 하나다. 신성하다는 건 이런 ‘연결됨’(connectedness)에 다름아니다. 어떤 방식으로 설명하든 이어지고, 서로 상관한다는 것이 신성의 요체이고, 이 연결이 천의무봉(天衣無縫)하게 맺는 것을 ‘거룩하다’고 이른다. 신은 타자가 없는 일자(一者)로서 ‘나'는 절대선이다.

악마는 반기를 든다. 사탄(Satan)이야 ‘맞서는 자’라는 뜻인데, 그건 프로테스탄트(Protestant)처럼 무언가에 이유를 가지고 ‘이의를 제기하는 반대’가 아니다. 프로테스탄트는 올바른 무언가를 위해 저항하고 있다. 반면 사탄은 대적하는 의지 자체다. 거기에는 대적함으로써 존재한다는, 다시 말해 ‘의존’하는 공생 외에 아무것도 없다. 반대할 것이 사라지면 사탄은 끝이다. 악마를 가리키는 여러 말마디 가운데 데빌(Devil)은 이원성(二元性)을 뜻한다. 그 또한 ‘신성’하지만, ‘하나’ 대신에 ‘둘’을 좇는다. 신 또는 신적 존재를 가리키는 산스크리트 말 데바(Deva/Devas)는 신성을 뜻하는 말(divine, divinity)의 어원이다. 악마를 가리키는 devil도 같은 어원을 갖는다.

둘의 팽팽한 기운, 물고 물리는 순환을 통해 대극(對極, counterplay)을, 천지간 번개가 치듯 양극(兩極, bipolarity) 사이에서 사건을 일으키는 힘을 발출한다. <악마>는 이원성에서 분노를 느낀다. 일원성의 신과 달리 타자를 용해하는 대신 타자로 느끼고 타자를 향한 감정은 동정과 혐오 사이를 널뛴다. 믿음 대신 불신, 일체감 대신 단절과 절망을 느낀다. 충만함 대신 결핍을 느낌으로 ‘갈망’한다. 고뇌하고 대상화하기에 똑똑하다. 악마는 양성구유(兩性具有)의 형태로 그려지곤 한다(마르세유 덱의 경우). 신적인 모습을 나타내고 신적 유희를 보인다. 그러나 뒤집힌 유희를 벌이기도 하고 짐승의 모습을 한 사탄으로 그려지기도 한다(라이더 웨이트 덱의 경우). 반대자. 배제와 결여를 최전선에 전시하는 것이다. 어느 쪽이건 악마는 강하지만 겁과 비겁을 숨기고 있으며, 넘치는 재능과 넘치는 갈증으로 남모르는 고통을 겪는다. 때때로 타자에게 자신의 감당 못한 고통을 흘려보내고 만다. 그는 냉소하기에 자기 처지마저 가엾어하기보다 남의 일처럼 바라보고 냉담하다. 그러다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빠르게 번민하고 속전속결로 마음을 정한다. 악마는 악마이기를 그만두거나 차별하고 혐오함으로써 불편한 감정을 단숨에 극복한다.


#세 번의 시작

에너지는 내려오고 올라간다. 고리가 이어지려면 올라간 에너지는 바뀌고, 바뀐 에너지가 또 내려온다. 본질적으로 변화는 두 개의 방향성과 스스로의 위상을 바꾸는 회전, 이상 세 가지로 이루어진다. 나머지는 축을 하나 도입할 때마다 좌표가 새롭게 생겨나는 것처럼 이 ‘셋’의 변주요, 곱하기다.

메이저 아르카나에서 힘이 모이는 점은 세 개인데, 메이저 1번 마법사, 8번 힘/정의, 15번 악마다. 이 점들로부터 나아가던 에너지가 각각의 주기 안에서 균형점을 찾는 것이 7번 전차, 14번 절제, 21번 세계 아르카나다. 내려오던 에너지가 반전하여 힘을 쓰는 것이 5번 교황으로, 내려오는 힘을 제동하고 반전하려 한다. 한 번 오르던 힘은 7번에서 균형점을 찾고는 8번을 통해 바닥을 밀며 무의식으로 내려온다. 10번 운명의 수레바퀴에서 다시 힘을 쓰며 꾸준히 올라간다. 이 힘, 오름은 14번에서 균형을 찾아 추스른 뒤 15번에서 로켓처럼 쏘아 올려진다. 이 힘은 18번에서 꺽고, 20번에서 거푸 꺽어 완전히 통제 가능한 힘을 갖는 21번 세계에 이른다.


힘들은 뒤집고 뒤집혀 모든 걸 바꾼다. 당신이 마법사나 사자 아가리를 벌리는 힘센 장사, 악마의 등에 올라탄다면 당신은 그 기세를 입고 종점까지 달려갈 수 있다. 당신은 바뀐 풍경을 볼 것이고, 특히, 악마 이후에 당신은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게 된다. 현대 심리학이 마음의 가설(Theory of mind)이라고 부르는 것은 학자들의 이론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자신이 온전한 개인이 되기 위해서, 최소한의 생존을 위해서도 그리고 어쩌면 궁극의 사회적 완성을 위해서도 필요로 하고 갖추게 되는, 사람을 사람으로 만드는 종의 특성이다. 그러나 모든 종의 특성이 각 개체에서 완전성에 차이가 있거니와 때로는 불리하고 다른 종보다 못할 수도 있는 것처럼 마음을 헤아리고 그려 보는 능력도 천차만별이다. 유전적 재능인가 싶으면 교육과 사회화의 결과로도 보이고, 또 반대로도 여겨져 개인과 사회의 상호작용이 무수히 많은 변주를 일으키고 무궁무진한 스펙트럼을 펼쳐 보인다.


어쨌거나 악마는 비로소 타인을 받아들이는 존재다. 그것이 못견디게 싫겠지만, 그것이 일으킨 균열이 당신을 바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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