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에 선 사람-들, 예술가
예술가는 경계에 선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선 경계는 두 가지이다. 우리와 맞닿은 경계는 불감청 고소원(不敢請 固所願)이라 할 만한 것들로 이루어진 세계로 건너가는 지경(地境)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궁금하기는 하지만 감히 바라지는 못하는 unwilling, 원외(願外)의 세계일는지 모른다. 그것은 즐거움과 쾌락의 세계랄 수도 있다. 그러나 위험한 쾌락. 또는 너무 많은 조건, 너무 많은 자원을 요구하는 것이기에 누군가 대표로 가서 그것이 어떠했노라 말해야 하는 것일 수 있다. 이 경계에서 윤리는 약해진다. 도전받고 흔들려 그것의 진실성을 시험받는다. 지상의 윤리가 희미해지는 곳, 의도하여 흔드는 곳 또는 뜻하지 않더라도 흔들리는 지대. 이 경계의 지경에 예술가가 산다. 그가 그러려고 들어설 수도 있고, 거기 오래 서 있어 그렇게 변하기도 할 것이다.
다른 한 경계는 우리는 아예 가지 않은 예술가들의 세계 거기서도 바깥에 면한 경계이다. 거기는 늘 미답의 세계며 unknown, 지외(知外)의 세계다. 그것은 아무도 가지 않았기에, 간다면 그가 간만큼 우리 모두가 나아간 것이다. 거기서 그는 인류에게 주목받는 인류 안의 경계인이 아니라 인류의 대표자로서 우주가 볼 때의 인간이다. 이 사람-들, 홀로여도 전체이기에 이 사람-들은 기쁨의 세계에 들어간다. 이 기쁨은 아직 아무런 조건에 구애받지 않고, 조건이라고 할 아무것도 거기 들어서지 못했기에 환하고 트였다. 처음이니까 그렇다. 이 경계에서, 이 만들어지고 창조하는 경계에서 윤리는 강해진다. 새로운 하나하나가 소멸하지 않고 지속하는 한 그것은 내적 법칙을 지키는 것이기에 윤리적이고, 윤리가 흩어지면, 내적 법칙을 위배한 그 순간 그것은 소멸하고 만다. 이 윤리는 그래서 지상의 윤리, 만들어지고 빚어낸 것, 어쩌면 다를 수도 있던 것이 아니라 거기 서려면 필연한 어쩔-수-없음, 부득이(不得已)이다.
예술가들은 지상의 윤리를 흔든다. 그리고 이 집단 가운데 다시 우뚝 솟아오르는 이들은 천상의 윤리를 우리에게 끌어들인다.
나는 경계에 선 그들의 고통과 슬픔, 그리고 기쁨을 모두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