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림이다 I am in Advent
17세기 데카르트가 사유의 중심을 신에게서 인간으로 바꾸어 놓은 것은 형이상학에서 인식론으로 학문의 중심을 바꾸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북유럽 르네상스로 이어지는 수 세기 동안 신을 향한 관심이 인간에 대한 관심으로 이동하기는 하였지만 전제와 기초를, 목적어 아닌 주어를 바꾼 것이 진짜 일이다. 이때부터 사고와 견해는 절대를 내려놓고 객관성을 추구, 주장했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인식론중심의 사고회로와 객관성 숭상의 한계만으로는 진입할 수 없었다. 문턱을 넘긴 것은 인식론이 확장했다거나 형이상학이 패권을 되찾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옛것과 더 옛것이 패권을 나눈 게 아니라 둘의 중간자로서 현상학이 등장했다. 이제 신이니 인간이니 중심이 무어냐고 묻기보다 사유 자체를 물었다. 훗설은 모든 것을 괄호 치고 그것이 그렇게 현상한다는 것과 그것을 그렇게 현상하는 것을 분리하지 않는 그런 분리가 불가한 경계선, 목적어와 주어가 감춘 관계어를 포획함으로써 형이상학과 인식론을 별개의 학문으로 대립하지 않고 하나의 세계를 구성하는 도구로 돌려놓았다. 그리고 이제 과학과 정치에서 군주정, 공화정(귀족정도 그 일종이고, 초기 시민혁명의 결과는 공화정을 정체로 가져왔다)은 민주주의로 이행할 수 있었다(냉전시대 공산주의/사회주의도 민주주의의 일종이다). 이런 내외 변화는 세계를 다루는 학문의 과학적 성격도 바꾸어 우리는 절대성에 이어 실재로서의 객관성을 내려놓았고, 상호주관성을 발견하고 이것이 개념상 가장 취약하나 실제로는 가장 굳건하여 의지할 만하다는 발견에 이르렀다. 리처드 로티가 우연성과 아이러니를 발견하고, 언어학과 심리학이 yes or no 말고 yes-no를 확실한 범주로 재이해하고, 아이리스 영이 정의를 분배라는 담론의 개미지옥에서 빼내 차이의 정치 속에 강림케 한 것, 에디트 슈타인이 완고한 이스라엘(하느님을 이겼다, 꺽었다는 이름)에서 또는 에서도 그리스도가 탄생했던 게 아니라 오직 이스라엘에서만, 그 완고함이라는 껍질의 견고한 보호 속에서만 그리스도가 탄생하였고 탄생함을 바라본 것 들, 이런 것들이 이를테면 이 진전 또는 순서대로의 이행에 힘입었다.
집단의 발달과 개인의 발달은 궤를 같이 하는가? 동시적인가, 개별자에게 선택권 말하자면, 살거나 죽는 살리거나 죽이는 재량이 온전히 또는 일부 유보되는가.
학교교육이 발달하고 일반화하면서 인류는 빠르게 전근대에서 근대로 진입했다. 학교교육은 집단 실행의 특성상 내용은 근대를, 사고 형식은 전근대를 닮는다. 또 담는다. 군주정처럼 각각의 지식은 사실과 다르게 시험 체계 안에서 독재자로 군림한다. 정답은 하나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2,3십대 청년들의 사고는 이를 극복하고 다음 단계로 진입했다. 그들은 공정에 민감하고 부당한 피해에 맞서 싸운다. 자기 목소리를 낸다. 그러나 이게 객관성이다. 실재의 객관성은 없기에(칸트 말을 안 듣고들 있었다. 그러니까 니체가 나중에 빽 소리친 거다. 거, 죽었대두, 신말이야 신, 전번에 절대성, 물자체. 그거 알 수 없다고 인식 밖이라고 칸형이 다 얘기했잖아) 그들이 객관성에 힘입어 연령주의라는 벽에든 각종 인습과 소수성을 넘어서서, 객관적이라는 자기 확신으로부터 힘을 발전시켰지만, 그러면서 동시에 객관성이라는 가면 아래에는 주관성이 그대로 자리잡았고, 주관성은 절대성을 표정 짓고 있다. 그거 감추는 데는 물론 객관성 가면만한 게 없다. 늘 쓰고 지내면 그게 자기 얼굴 같다. 표정도 얼굴빛도 안 바뀌니 더 듬직하고 점점 진짜 같다.
그리고 바야흐로 현상학적으로 사고할 필요가 크다. 달리 어쩔 수가 없다. 사고자료를 상호주관성으로 검증해야 한다. 자기 자신과 거리두기는 불가피하게 나와 나 사이의 거리가 나와 남 사이 거리보다 결코 가깝지 않다는 것을 알려준다. 더 멀 수야 있다. 같거나 멀고, 정보의 비대칭으로 손해봤다고 생각될 때라야 비로소 균형점에 수렴될 것을 희망이라도 할 수 있다. 실행은 대화 후, 대화의 계속 속에서만 가능하며, 종료하지 않고 반복 갱신을 넘어 지속하고 내파를 견디어야 한다. 땅이 겨울을 견딘 뒤에 봄을 맞듯 시간성을 포함해야 형이상학과 인식론 양자를 지양하고, 변화하는 생명을 내내 바라볼 수 있다. 그러고서야 참되게 선택할 수 있다. 자유는 조건이 아니라 능력. 그리고 결단인 것.
아주 오랫동안 사람들은 세계를 단일화하는 폭력 속에 길러졌고, 일부의 선구자와 그들을 만나는 행운을 누리는 사도들, 계승자들 또는 거기 격분해 스스로 선하고 공동체에 이바지한다고 믿으며 세계의 기득권을 지키는 순교 양산자들이 있었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후 단계로의 성장은 스스로 선구자요 길 떠나는 사람으로 남는, 이 땅에서는 안식을 구하지 않음으로써, 집을 두지 않음으로써 나그네로 남아서만 수행할 수 있었다.
지금은 하나라는 불가능한 이상의 거짓을 폭로하고 그 뒤의 조종자 또는 약탈자를 인식해 저항하는 둘의 사고가 일반화됐다. 서구의 68 세대, 한국의 경우 80 학번 세대를 부모로 둔 90년대 및 2000년대 이후 출생 세대들에서 이는 일반적 현상으로 보인다. 그러니 하나는 둘에 대해 억압이고 둘은 하나에 대해 배은망덕이나 남탓하는 이기주의자로 비칠 수 있다. 둘이 서로를 바라보면 숨구멍이 없다. 그러나 다시금 진짜로 바라보면 서로에게서 배울 수 있다. 불가능한 하나는 둘을 받아들이고, 전투하고 자기방어하는 둘은 하나를 꿈꿀 때, 하나는 둘 속에 녹아들고, 둘은 멈추지 않고 셋으로 나아간다.
이수가 삼수로 가느냐 사수로 가느냐의 갈림길. 아이가 아닌 이상 사고가 하나에서 둘로 깨어나는 건 정한 이치다. 그러나 집단과 개인이 둘 다음 행보를 셋이라는 현상학적 사고의 춤을 출지, 더 견고한 지배와 대립의 공존인 넷의 사고로 넘어가 각자의 격벽 안에서 전체에서 소외시킨 자기 영역만을 구축할지는,
고통이다.
환희와 영광 사이에는 고통이 있다.
영광과 환희 사이에도 고통이 있다.
사람들은 파스카의 건넘감에 가로놓인 수난과 죽음은 인식하는데 (수용은 별개)
탄생, 육화, 이 내려옴에 드리운 짙은 어둠은 잘 인식하지 못한다.
끝내 이승을 영점으로 삼아 사고의 저울을 조립하는 이상 그 저울은 재지 못하는 어둠을 아니, 빛도 없고 어둠도 아닌 공허를 인식하지 못한다. 파스카에 앞서 이미 그때 세계는 무한으로 찢겨 해방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사건 뒤에 영광이 올 차례가 아니라 수난, 고통이 올 차례이기 때문에 뭔가 잘못됐다고 착오나 착각이라고 치부해 오류를 제거한다. 그러면 우리는,
태어나지 못한다.
이 그리스도 신화에서 그리스도 탄생은 인류와 세상 편에서 얻음이지만, 그리스도 편에서와 하느님 편에서는 빼앗김이다.
반드시 물어뜯고 쥐어짜는 줄 알면서도 젖을 내어 주는 어미와 같이. 적어도 그리스도신화의 하느님은 아버지 아니라 어머니이고, 당대 문법에서 예수의 입을 통해 아빠로 불렸다.
나는 대림이다.
한 주기의 전례주년 안에서가 아니라
전 지구사에서 그러하고
나라는 존재양태, 내가 존재하는 방식이 그러하다.
나는 영광을 향해 걷지 않고 수난을 향해 걷는다.
나로서는 알 수 없고 경험하고 통제할 수 없고
감히 바랄 수 없는(그럼으로써 할 수 있다면
이 잔을 치워 달라 기도할 것이다.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라 할뿐.)
수난과 죽음, 이 고통의 신비를 살 것이다.
연중시기로 한없이 사순시기를 미룰 수 없다는 걸 알며
모든 신비의 부득이한 시작
성탄으로 다가간다.
나는 대림이다.
인간은 대림이다.
꿈꾸고 성장하고 살아 있어 변할 수 있는 한.
때문에 인간의식은 세계의식 안에서
뭇 피조물로부터 들어올려져
천사들보다 귀한 데까지 끌어올려진다.
천사들이 합창한다.
완전한 영원 속에서
지극히 높으신 이가 누리는 영광은
이 땅, 우리가 잘 아는 이 땅 위에서는
그이가 사랑하는 이들, 더 정확히 그이가 사랑하는 줄 믿고 희망하는 이들에게
평화.
무진장한 고통과 어둠에 잠기며 간직하는 평화다.
호산나, 인 엑첼시스 데오. Hosanna in Excelsis Deo.
무죄한 아이들 한 무리가 죽고 나면
그리스도가 태어났다는 것을 알릴 수 있다.
나는 대림이다.
성탄을 차비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