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을 멈추기
불행한 사람은 대개 불행을 좋아한다. 불행에서 벗어나기를 거부한다. 그들은 불행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말하고’는 온갖 핑계를 대고,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기울여 불행에 ‘머무른다’. 말은 No, 몸은 Yes. 그들을 불행에 빠뜨린 행동을 굳세게 반복한다. 악습을 인정할 때에도 긴 시간 면담을 통해 다른 어떤 대안도 받아들이지 않은 뒤에 그들이 하겠다고 하는 것은 늘 하던 그것을 그대로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말한다. 내 마음이 달라졌기 때문에 다른 결과가 나올 거라고. 그들은 세상이 그들의 기분대로 움직일 거라는, 발달심리학이 서너 살 때 스스로를 “나”라고 지칭하며 나인 ‘나’와 저 사람이 자신을 ‘나’라 하고 나는 정작 ‘너’라고 부르는 것을 구분하기 시작할 때 깨어진다고, 멈춘다고 말하는 마법적 사고를 수행한다. 어떤 장면에서 그들은 건강하게 생각하고, 훌륭하게 조언한다. 그러나 자기에게 돌아오면 개성이 아닌 틀린 것을 고수한다. 그에게 해를 끼치는 그것이 그에게 주는 유익은 하나다. 그 불행과 시련은 그가 해야 할 다른 일들을 하지 않는 것, 시도하지 않거나 미루거나, 마땅히 타인에게 주어야 할 것을 주지 않는 것을 옹호하는 알리바이가 된다. 할 일은 하지 않고 겪지 않아도 될 일은 겪는 ‘부당거래’를 저지르는 것이다.
불행과 당당하게 싸우는 사람도 많다. 그런 이들은 이제 구조적 문제와 마주치고, 그건 그들보다는 그들 곁에서 모두가 책임지고 해결할 일들이다. 그렇지만 이미 그때 그들은 불행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존경해야 할 사람, 우리 모두와 우정으로 연결된 사람이다. 그렇다고 모두를 투사로 만들 순 없다. 그게 좋은 세상이라는 생각은 안 든다. 그렇지만 불행을 벗도록 도울 때 그 도움을 더 증오하고, 보게 하였으니 본 것에 대한 책임이 그걸 만든 자신이 아니라 그걸 보고 피하라고, 떠나라고 한 사람에게 있다는 절규는 또 다른 비명을 일으킨다.
당신은 불행한가, 행복한가? 그건 당신 마음대로 하라. 한쪽을 택했다면 좋은 것은 행하고, 나쁜 것은 중지하라. 중지한 공백에는 무엇이든 자유롭게 드나들며 당신이 선택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나쁜 것을 계속하면 아무런 공백도 없고, 당신은 모든 선량한 조언, 현명한 조언 들을 받아들일 공간이 없다. 만원버스처럼 들어갈 수 없고, 그대에게 들려오는 건 전부 그대를 괴롭힐 뿐이다. 먼저 비우라. 중지하라. 불행은 그대로 둔 채로 고칠 수 없다. 불행은 중지한 뒤에 바꿀 수 있다. 그냥 툭. 멈추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