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 세 개의 돌 연재
삶과 세상을 이해하고 구성하는 데 할 수 있다면 단순한 도구가 필요하다.
그러나 요청되는 최소수 일은 닫혀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기술되면 분리되는 것으로 일이 깨진다.
다음 오는 이는 이와 저를 나누는데 둘은 교섭하지 않고 순혈을 추구한다. 교잡한다면 둘을 덜 확립한 것뿐이다. 아무튼 성립한다.
다음 오는 삼은 이와 저를 나누고도 그 나눈 선은 이냐 저냐 물을 때, 아무리 잘게 그어도 남는다는 걸 아는 사고다. 그래서 둘 사이에는 늘 사이가 있다.
결과 난 것의 사이는 결과에 흡수돼 하나나 둘의 양상을 띠지만 분명히 있으며,
아직 결판나지 않은 것들은 계속해서 미지, 미정의 것들과의 사이에서 새로 나고 있다.
그중 어느 것이 다음 현실이 될지 모른다. 이와 저 사이에 놓인 '와'를 포착하는 일은 그러나,
반드시 변화를 포함하고 낳는다. 그러므로
둘을 서술하듯 주부 술부 나누어 결론짓고 환원할 수 없다.
변화의 원리는 변화로 다루어야 하고, 그것들이 서로 다른 위상과 격에도
실은 변화하는 전체, 하나로서 서로 몸을 바꾸어 나타난다.
티벳 사자의 서가 모사하는 바 공포의 대왕들은 평화의 신들이 얼굴을 바꾼 것뿐
무서워할 게 아니다.
삼각측량하듯 말은 다른 자리에 서서 우리를 합치시키고
합일케 하는 데 쓰인다.
진짜 답은 각자의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고 깨치며
말 또는 개념, 숱한 표현은 과녁을 비껴감으로써 과녁을 드러낸다.
나는 타당한 최소수이며 말할 수 없는 하나를 말하여 하나이기도 한
변화의 수 셋을 시공간 사유에 펼치고자
천지인삼재를 찾아주고 문턱을 지키는 세 천신,
세 돌을 제시한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세 개의 돌을 이렇게 또
저렇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