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하나: 과거는 늘 바뀐다

과거를 바꾸는 나, 우리

by 이제월

과거를 바꾸는 나, 우리


과거는 알지 못하는 우리로 인해 끊임없이 바뀐다.

우리 앞에 매시각 내일이 닥치기 때문에

우리는 미래가 불확정하다고 느끼거나 믿거나, 믿고 싶어한다.

의심하더라도 그렇다면 조금 안심이 된다.

안심이 되는 건 검증 없이 통념이 된다.

엉성한 논리가 겹겹이 에워싸지만 그건 마치 천동설 시절

무수한 보조 공식을 동원해 맞춤하게 작동한 천동설처럼 ‘연합’이고 ‘공모’다.

오늘을 살아가야 하니까 감내하는 ‘위장’이다.


미래에 대해 우리는 무지한 것이지

미래가 불확정하다는 확실한 지(知)는 우리에게 없다.

미래가 확실하다는 말들도 거짓말이었지만

불확실하다는 말 또한 아직 탄로나지 않은 거짓말일 수 있다.

미래는 다른 방식으로 말하여야 하는지도 모른다.


과거는 비교적 분명하다.

우리는 미래 못지 않게, 그리고 아주 명백하게 현재에 대해 그런 것처럼

과거에 대해 무지하다.

우리의 지는 미래에 대한 지보다는 ‘긴 말’로 짜인 것뿐, 어떤 확실성을 갖지 않는다.

‘비교적’ 나은 추측과 가설을 ‘객관성’과 ‘사실성’을 가진 것으로 쳐 주는 것이다.

그렇게라도 공통사실을 만들어야(fact는 라틴어 factum에서 나왔다. factum에서는 fact뿐만 아니라 factory도 나왔다. 팍툼은 만들어진 것을 뜻한다.) 우리는 대화할 수 있고

의지처를 마련할 수 있으니까, 이 행동은 생존에 유리하고 최소한의 정당함을 확보한다.


그런데 우리의 무지의 크기가 어떠하든지

과거에는 강하게 확실한 것이 하나 있는데,

과거는 항변할 수 없고 탄로났으며 모든 힘을 빼앗기고 추앙받으므로

이 신성한 사실(factum에서 비롯한 fact)은

완벽하게 무력하다는 것이다.

마치 허깨비나 유령처럼

과거는 그것을 믿는 자들에 의해서 믿는 자들의 힘을 차력(借力)하여서만 위력을 발휘한다.

그리고 형성된 위세는 기세를 때고 우리를 지배한다.

우리는 “국가라는 대괴물”(플라톤)에게 지배받기보다 ‘과거’나 ‘경험’이라는 유령에게 지배당하고 있다.

아무튼 과거는 변신한다.

우리의 희망과

우리의 두려움에 따라서.


그러므로 과거가, 또는 경험이

당신을 규정하게 두지 마라.

어제까지 칠십 년을 게을렀고

칠십 년 동안 붓 한 번 제대로 잡아본 적 없는 당신은

당신이 원하는 한

미술에 재능을 발휘하고

뉴욕 현대 미술관(MOMA)에 수십 점의 작품을 걸리게 할 수 있다.

물론 개입하는 건 당신만은 아니며,

다른 타자 이전에

가장 위협적인 타자 즉, 미래,

즉, 다음 순간 닥치는 당신 자신의 개입을

우호적으로 돌려놓아야 할 것이다.

뭐 그래도, 당신은 당신과 언제든 대화할 수 있다.

맞는 방법을 쓰기만 한다면.


우리는 알거나 모르거나

미래에 영향을 미치지만, 미래에 무력하다.

그리고 과거에는

사실 강력하게 작용하여 계속해서 변형한다.

당신이 자유롭기 위해 미래의 어떤 일을 갈망하지 마라.

당신이 자유롭기 위해 정작 필요한 것은

당신을 다시 규정(갱신)하는 것이며

이 규정의 거의 전부가 과거에서 유래한다.

당신의 과거, 인류 집단의 과거, 이 천체나 우주 자신의 과거로부터.

그리고 과거는 그때에는 전부였으나 지금은 다소곳이 앉아서

가만히 있다.

우리가 밀면 미는 각도대로 미는 힘만큼 밀려 간다.


당신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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