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를 살아가는 법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를 보며 여러 번 울었다.
아름답고 힘차다.
단지 ‘수학은 아름다워요’라고 말하자는 게 아니다.
수학은 상상계와 현실계가 완벽하게 합치하는 세계다.
어떤 의미에서 생각과 현실은 모두
수학의 세계에 합치하려 발버둥치고 있다.
수학으로 수렴되고자
실수와 허수가 내달리고 있다.
중력이 견디기 힘들 때
중력을 알 수 없을 때
우리에게 있거나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아무 데도 없거나
우리가 상상할 수조차 없는
그러나 모두를 만나고
하나로 잇는 그 점이 있다는 게
큰 위로가 된다.
붙잡을 재주는 없어도
바람이 불어 이마를 스칠 때
가슴이 환호하듯
나는 온몸이 수학에 작약한다.
입시에서 끝내 알고 푼 문제가 하나도 없던 열아홉 소년은
그 뒤에야 태어난 동료와 함께 일하며
가르치고 배운다.
그리고 꿈꾼다.
마지막 날들에는
생명을 심고 가꾸고
수학을 배우고 풀고 있을 거라고.
그것은 가장 낮은 노동이자
가장 높은 사치이려나.
그리고 또 졸듯이 걷고 있을 거다.
중력을 사랑하려 애쓰기를 멈추고
벌써 사랑하고 있을 테다.
벌써 감사하고 있지만.
사족. 영화는 수학을 거의 전혀 몰라도 상관없다. 그러느라 수학을 좀 더 많이 이야기하는 <무한대를 본 남자>보다 밋밋하거나 빤하게 느껴질 수 있다. 클리셰나 단순한 구조, 빤한 전개 같은 것. 그렇지만 시종 따뜻하고 '진짜 같다'. 그러니까, 긴장을 풀고 다 보고서 정신이 더 맑아지는 걸 느끼시기 바란다.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를 본 뒤 미뤄 두었던 <무한대를 본 남자>를 보았는데, 라마누잔의 실화를 다룬 이 영화는 기품이 느껴지는 우아한 영화였다.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분명 영화 미학적으로는 <무한대를 본 남자>에 미치지 못하지만, 결국 <무한대를 본 남자>가 직접 대사로 말하고, 대사로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 실존인물인 위대한 수학자 라마누잔이 실제로 직접 한 말이기 때문이었고, 나는 같은 사항을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를 보며 저절로 자아나오는 걸 느끼고 명료하게 문장으로 떠올릴 수 있었으니, 누가 감히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를 별볼일 없는 영화로 취급한다면 자신 있게 차인표 흉내를 낼 수 있을 것 같다. (검지 손가락 들어서 좌우로 흔들기 말이다.) 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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