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하나: 무엇하는 사람인가

우리는 희망한다

by 이제월

교사는 무엇하는 사람인가

가르치는가?

배움은 어디서나 일어나고 가르침도 인생을 통틀어

모든 삶의 현장에서 벌어진다.

그러나 그들을 다 교사라고 부르지 않는다.

선생은 무엇하는 사람일까.


많이 아는 사람일까?

지식의 우위?

방법론적 우수성?

인격의 고매함?

어떤 것도 교사상을 만족시켜 주지 않는다.

아니면 단순히 시대의 요청에 따라 복무하는

중간자일 뿐일까?

일종의 소매상 같은?

이들을 관통하는 무언가가 없다면

즉, 선생은 무엇하는 사람이다,를 뚜렷이 말하는

변치 않는 것이 없다면

선생은 사라질 것이고,

빨리 사라져야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에게 선생은 몰라도 '선생님'은 저마다에게 분명하게 정의된다.

머리로, 언어로 형용하지 못할 때에도

저이는 나의 선생이라고 기억되고, 느껴진다.

저치는 내 선생이 아니다, 저런 이는 선생이 아니라고 알아진다.

우리는 선생이 무언지 알고 있다.

기왕 아는 것을 또렷이 불러 봐도 좋을 것이다.


부딪쳐서 알기 전에, 알고자 헤매기 전에

알고서 다가가면 빨리 찾을 수 있고

찾기까지를 견딜 수 있고

굳이 찾는 까닭을 가질 것이다.

그러니 그의 좌표를 부르자.


우리는 심판하지 않는다.

우리는 가르치지 않는다.

그 외양을 띨 때라도

우리는 오직 희망하는 사람이다. 배우는 사람이다.


선생이란

그가 하는 모든 걸 통해 배우고 있는 사람이며, 희망을 거두지 않는 사람이다.


어떤 이가 누군가의 앞에서 소비자가 아니라 학생이 되는 것은

앞에 선 이가 배우고 있기 때문이며,

그가 같은 희망을 내게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떻게든 희망을 발견하고

어떻게든 그 불씨를 일으킨다.

우리는 평화를 부르는 사람이 아니다.

우리는 불온하게 불지르는 사람이고

이 불로 온세상을 태우려는 자들이다.

우리는 이걸로 됐다, 이거 말고는 없다는 이들에게

너머가 있다고, 넘어갈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아무도 그 말을 듣지 않으면 내 발로 넘어가고, 넘지 못해 굴러떨어져도 부딪치는 사람

나서는 사람이다.

먼저 났으니(先生) 죽어서 사는 것도 먼저 할 것이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 들어갈 것이다.


우리는 예언자이고, 무식자이고, 그러나 열망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시체가 아니기 때문에 살고,

죽고 나서도 살 것이다.


우리는 이미 절망한 사람에게서도 어떻게든 희망을 보고 믿으며

인내하여 그를 쪼개 그 속에서 증거를 드러낼 것이다.

우리는 평가할 때조차 심판자가 아니며

희망을 일으키려, 깨우려 애쓸 뿐이다.

그가 포기했을 때에도 우리는 그를 포기하지 않는다.

모두가 미워하는 이를 사랑하는 까닭은

그를 맞대 기진맥진한대도 우리는 그가 실재하며

실재하는 누구든 아니, 무엇이든

희망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바로 이 안에서, 이런 한에서 우리는

'즉시 전부'를 원한다.

'즉시 전부'를 요청한다.


우리는 희망하는 사람이다.

희망하는 데 필요하다면 절망하고

희망하는 데 필요하다면 단죄하고

희망하는 데 필요하면 오류에 빠질 것이다.

그러면 선생이고

그렇지 않으면 선생 아닌 다른 무엇이다.


선생은 불합리한 존재다.

무언가에 일껏 질서를 부여하고 자리를 찾아놓으면

그 자리가 아니라고 어지럽히는 사람이다.

명백히 새카맣게 물든 이에게

이 얼룩을 빼자꾸나, 하얗게 되자꾸나 말하는 사람이다.

그냥 자빠져 있으려는데 천리길 만리길을

그게 뭐 대수냐며, 갈 수 있다고 가자고 채근하는 사람이다.

안 갈 건데, 길 밖에서 기다리고

갔나보다 하면 어느새 돌아와서 아무개는 갔는데, 너는 언제 가느냐, 저기서 기다리마고

아주 미친 소리를 하는 작자다.


이런 미친 자들이 흘러넘치면

제정신이지만 이를 무시할 수 없는 이들이 방법을 찾는 법이다.

물론 미친자들도 방법을 찾지만

절망하는 자들과 손잡지 않고

희망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그것은 절망하는 쪽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주도권은 희망하는 쪽에 있다.

희망이 바늘이고, 절망이 실이다.

희망이 당기는 대로 절망이 뒤따르고

단단히 당기면

한 벌의 옷이 태어나

하나의 삶의 방식이

하나의 시대를, 아니면 한 지역이나 한 계층, 한 사람이라도 구한다.


그 옷을 지닌 자 구해질 것이고

그 옷을 입지 못한 자 가라앉아 잠길 것이니.


아, 그 미친 자들은 또 밑바닥에 내려가 건져 내면 살 거라고 지랄 지랄을 할 것이다.

나는 그런 선생-님들을 기억한다.

그들이 없다면 심심할 것 같다.

감사하다.



희망은 인내한다.

인내는 희망을 지켜 준다.


on patient, 환자 또는 견디는 자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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