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에 답하여] 글이 무엇인가요
글은 정신입니다.
우리 감각이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정신.
착각이 아니라 실재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형태.
글은 쌓고 더하는 것 같지만
겉보기에 그렇고
글쓰는 이의 정신은 계속해서 덜어 냅니다.
만나야 하는 것들을 만나고
그러고는 덜어 냅니다.
열린 데로 들어온 것들을
기꺼이 떠나보내며
보낼 수 없는 것들을 남기고 붙잡습니다.
그게 억지스러우면 글이 무리하고
그게 자연스러우면 글이 매끄럽고
그게 마땅하면 글이 밝습니다.
오감은 우리를 지상에 묶어 두지만
연결이 늘 때마다 우리는 자유롭지 않고
달라질 게 없어집니다.
정신은 우리를 자유케 하지만
정신과 우리 사이 연결,
다른 연결과의 사이에서 일방적으로 끄달리지 않게 하는 밧줄이 되는 건
글입니다.
글은 정신이 타고 다니는 길이고
정신이 타는 배입니다.
배이자 뱃길입니다.
글은 그래서 정신이 자유롭게 타고 내리도록
그 정신의 꼴을 바꾸지 않고 전달하도록
자신을 움츠리기도 펼치기도 하는
뜻에 맞추어 형태를 바꾸는 찰흙과도 같습니다.
말과 글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든 동시에
사람을 그 이하로 바꾸어 버릴 수도 있으나 귀천을 따지지 않는다면
아무튼 인간을 ‘정신’적 존재로 구별짓는
가장 본래의 뜻으로서 ‘칼’입니다.
칼날로 아무도 해치지 않으면 ‘길’이 되지요.
그러므로 칼로 베어야 할 것은
내게서 나 아닌 것을 베어야 합니다.
암은 세포는 세포지만, 내게서 나고 나로부터 변한 것이지만
도려내어야 하는 것처럼요.
글은 그러므로
정신적 존재로서 인간이 생존하기 위한 것이며
육체적 존재이면서도 더 고귀하게 상승시키는 지렛대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