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하나: 베풀다

항상 자비를 베푸십시오

by 이제월

항상 자비를 베푸십시오.


자비를, 베풀다!


마침내, 이 얘기를 한다.


자비를 베푼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베푼다'는 말이 차별적이거나 위계적이라고 느낀다.

착각이거나

상처를 주는 나쁜 생각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

베푼다는 말 대신 나눈다고 하자거나

또 다른 말들을 제시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저마다 다 다른 뜻을 지닌다.


베푼다고 할 때, 거기에는 위아래가 아니라

강약, 많고 적음, 보고 보임처럼

한 쌍이고 양쪽 모두 주도권을 갖지 않는다.

원근의 주도성은 외부, 곧

내재(內在)하는 초월(超越)인

소실점(消失點, 영: vanishing point)에 있다.


베푸는 이는 희생하고

셈하지 않는다.

그럼으로써만 그것은 선행(善行)이고

순수한 희생 제물로서

자기를 바치는 것이다.


베푼 것은 오직 하느님께서

셈하신다.

초월적이고, 이는

이승 내부의 교환(交換, 영: exchange)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신비로운 교환이며

선행(先行)된 무상(無償)의 교환에

응답하는 행위다.


따라서

'마땅하고 옳은 일'이고

'기쁘고 복된 일'이다.


우리는 오직

자비를 베풀어

신에게 가 닿는다.


기도와 선행이

둘일 수 없는

존재론적 까닭이다.


그대가 베풀 때

그대는 누구의 위에 서는 게 아니라

가능한 일 ― 그에게 건너가는 다리를 놓아

불가능한 일 ― 하느님께 다가가는 다리를 놓는다.


그러면 그 다리를 건널 수 없는 우리 대신

자비가 우리에게 내려온다.


우리는 그 자비를 다시 베푼다.

베풀어진 것임을 기억하고

베풀어진 것을 그대로 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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