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자비를 베푸십시오
자비를, 베풀다!
마침내, 이 얘기를 한다.
자비를 베푼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베푼다'는 말이 차별적이거나 위계적이라고 느낀다.
착각이거나
상처를 주는 나쁜 생각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
베푼다는 말 대신 나눈다고 하자거나
또 다른 말들을 제시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저마다 다 다른 뜻을 지닌다.
베푼다고 할 때, 거기에는 위아래가 아니라
강약, 많고 적음, 보고 보임처럼
한 쌍이고 양쪽 모두 주도권을 갖지 않는다.
원근의 주도성은 외부, 곧
내재(內在)하는 초월(超越)인
소실점(消失點, 영: vanishing point)에 있다.
베푸는 이는 희생하고
셈하지 않는다.
그럼으로써만 그것은 선행(善行)이고
순수한 희생 제물로서
자기를 바치는 것이다.
베푼 것은 오직 하느님께서
셈하신다.
초월적이고, 이는
이승 내부의 교환(交換, 영: exchange)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신비로운 교환이며
선행(先行)된 무상(無償)의 교환에
응답하는 행위다.
따라서
'마땅하고 옳은 일'이고
'기쁘고 복된 일'이다.
우리는 오직
자비를 베풀어
신에게 가 닿는다.
기도와 선행이
둘일 수 없는
존재론적 까닭이다.
그대가 베풀 때
그대는 누구의 위에 서는 게 아니라
가능한 일 ― 그에게 건너가는 다리를 놓아
불가능한 일 ― 하느님께 다가가는 다리를 놓는다.
그러면 그 다리를 건널 수 없는 우리 대신
자비가 우리에게 내려온다.
우리는 그 자비를 다시 베푼다.
베풀어진 것임을 기억하고
베풀어진 것을 그대로 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