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지 않다(不異). 가르치고 배울 것
정치나 예술 종교 이런 것들을
다른 범주로 이해하는 건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뚜렷이 경계 지은 것처럼 보이고
다루어지지만
이들 사이 경계는
흐릿하다. 차라리
이들은 온도, 냉각의
스펙트럼 안에 자리하고 있다.
이것이 저것이고
저것이 이것이 되는 그것이란 말이다.
변신.
하나도 닮지 않은 데까지 진화한다.
무엇이든 거룩하면 종교다.
갸륵하면 정치다.
아름다우면 예술이다.
영을, 온 존재를 흔들어 움직이면 종교요
몸의 자리, 몸이 움직이는 방식을 바꾸면 정치이며
마음을 움직이고 다르게 느끼게 만들면 예술이다.
하나뿐일 때도 있고
둘일 때도 있으며
셋 다일 때도 있다.
순차적인 때도 있고 전부인 때도 있고
일부에서 맴돌 때도 있지만
분명한 건 하나라는 것
하나가 이리저리 움직이며 몸을 바꾸고 세계를 바꾼다.
그때마다 다루는 언어를 갈아 입을 뿐
둘이 아니다.
숭고와 미 둘 사이를 오갈 뿐
소재나 재질이
심지어 수행방식이
다르지 않다.
과연 어디까지 이어져 어디를 건드리고
어디서 움직이느냐가
정체를, 이름을 결정한다.
교육은 기술에서
예술이 되고
정치가 되고
종교가 된다.
다만 교조(敎條 그리고 敎祖) 없이.
니체의 말처럼
<영혼을 수정(受精)>한다.
우리는 연속체다.
우리는 하나다.
이걸 보이지 못하는 어떤 것도
배움이 아니다.
거기에 가르침은 없다.
이것을 가르치면 색(色)을 피할 수 없고
이것을 배우자면 공(空)을 벗어날 수 없으니
공즉시색(空卽是色)이며 색즉시공(色卽是空)이다.
색불이공공불이색(色不異空空不異色), 다르지 않다는 말은 [반야심경(般若心經)]
참말이다. 진언(眞言), 만트라(mantra, मन्त्र)다.
손을 흔들라.
그것은 있는가, 없는가.
산다는 것은 행위. 존재를 존재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