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레인지
제시어 겸 제목: 전자레인지
제한: 제시어를 공개하고 5분.
애시당초 그 물건이 왜 거기에 있었는지부터가 의문이다. 겉보기에 똑같은 멀쩡한 제품인데, 정체는 그렇지가 못하다. 처음 문제에 봉착한 건 테리의 작업이 실패했던 것이다. 우리는 대체 수단을 찾아야했고, 우리 중 한 사람이 전자레인지를 떠올렸다. 구마다 한두 개 설치된 재활용센터에서 쓸 만한 걸 괜찮은 가격에 구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어렵지 않게 물건을 구해 왔고, 테리는 자신의 야심작을 곧 건져 낼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윙 조용한 소음을 내며 돌아간 뒤 경쾌한 땡 소리. 우리는 그것을 열고 나서 쏟아지는 찬바람에 뒤로 넘어졌고, 잠깐 사이에 온 방안이 얼음으로 가득찼다. 공기 중의 수분이 몽땅 얼어붙은 듯 숨 쉴 때 통증이 느껴졌다. 모두 정신 없는 가운데 나는 가까스로 전자레인지 문을 닫았다. 교수님이 얘기했던 로키의 상자다, 틀림없다. 이런 물건이 그런 곳에 뒹굴던 것이 우연인지 어떤 음모인지 알 길 없지만, 우리는 대단하고 쓸모없는 물건을 찾은 것이 분명하다. 아니, 어쩌면 이건 오랜 기도의 응답일까. 우리는 테리의 작품을 맛보는 대신 기후위기를 해결해 보기로 했다. 이것이 인간에게 쓸데없는 안도감과 무책임한 무관심을 줄지 모르겠지만, 그건 다음 할 일로 두자. 날마다 시끄럽게 우리를 깨우는 골목길 아이들의 목소리를 더 들으려면 일단은 열어야 한다. “높은 산에 올라가 다시 열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