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다 그리고 하다 그리고 힘에 대하여
성자(聖者)의 돌 이해하기
“있다”는 것.
“있다”는 것은
‘일어난다’는 것을 가리키지 않는다.
햄버거는 ‘있지만’
워낙 단시안으로 본 탓이지
햄버거란 입자들이 이리저리 엉켜
잠시 엮인 현상일 따름이다.
햄버거는 진짜 있는 게 아니다.
신은 규정할 수 없지만
‘있다’면
진짜 “있다.”
햄버거는 ‘있다’고 가리키자면
할 수 있다.
‘옅게’ ‘흐릿하게’ ‘있다’고.
있다 —> 한다 / 된다 —> 일어난다. 그것이, 그것의 여파, 갖은 반응이.
힘은 있음과 일어남 사이에서
있음에 근거해 일으키는 힘이다.
힘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함’ 속에 숨어 있다.
그래서 계속 일어나야
일으킨 힘을 얻는다.
그러니까 우리는
Yes / No 가 아니라
Go / Stop 을 외치는 거다.
비트겐슈타인은 첫 문장에
다 말했다. 굳이
안 해도 될 말을 이어 썼을 따름이다.
후기 비트겐슈타인은 결국
자신이 늘어 세운 말 울타리들을,
이 구속을 아무도 못 풀자
자기가 나서서 부수고
만다.
그러나 너무 크고 너무 많다.
개구멍을 낸 것이니
울타리를 치웠다고야 할 수 없다.
그저 선문답(禪問答)처럼
첫 문장만 던졌다면 좋으련만.
업(業)을 쌓아 카르마(Karma, कर्म )를 푸느라 열일하다 갔다.
힘은, 함에서 나온다.
함이 힘에서 나오는 게 아니고.
함은 있음 위에만, 있음 사이에만 일어난다.
성자의 돌은 무엇이 있다, 있게 하는 데 있다.
있어야 하는 것을 그러나
있기 때문에 있게끔 발견하는 것.
그렇게 읽고
뒤집어,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