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생활_외모는

말하지 마라

by 이제월

슬기로운 생활

외모는 말하지 마라



외모를 지시하는 일체가 인신공격인 이유는

잘생겼다고 하건, 예쁘다고 하건

전체를 일부로 환원하고 귀속시키기 때문이다.


꽃이 예쁘다고 할 때조차

만약 꽃이 사유하고, 의견을 피력한다면

감사하거나 기뻐하기보다 노여워할 것이다.

생각하는 꽃에게는 달리 생각이 있을 것이고

이미 예쁘거나 예쁘지 않거나를 초과한 그를 묶어

억지로 예쁨-임/아님의 병 속으로 우겨 넣는 짝이기 때문이다.

꽃은 그를 대상화하는 나를 힐난하고

내가 선의를 비치고, 내가 너를 좋아함을 피력하면

더욱 분개해 그런 대상화가 성녀 만들기든 창녀 만들기든

어느 쪽에도 동조할 수 없음을 밝힐 것이다.


차별과 비방의 범주를 적극적 아니, 제대로 규정하면

우리는 다정한 사회, 친절한 사회를 지향할 수밖에 없고,

다정함이며 친절함은 상대를 결코

상대의 동의 없이 무언가로 대표하지 않는 것이며, 더 나아가

상대가 즐거워할지라도 상대를 무언가로 환원하지 않는 것이다.

그는 나와 다른 타자로서 나와 대등한 다른 주체이지

내가 보거나 감각하거나 판단하거나 분류하는 그 어떤 기호,

그 어떤 우수하고 넓고 깊은 인식에도

포섭되지 않는 불가해, 알아도 안다고 단언할 수 없는

생동하고, 생성하는 지금 이 순간의 ‘너’이기 때문이다.

그것-대상으로 환원할 수 없는 너는

어떤 속성으로도 귀속할 수 없고

너를 너가 아니라 사회적 현상과 사건을 서술하는 데 빌려 쓰는 껍데기로서

사회적으로 용인된 예외적 가두기-캐리커처나 사건의 일부로서 특정하게 서술되는 방식

이를 테면, ***사건의 용의자, *** 뇌물 수수한 정치인, *** 가담자 같은 것이 아니고는

그리고 그러한 때에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오직 진짜가 아니고 기호로 쓰이는 것일 따름이기 때문에 신원을 감추고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이런 때

이런 때 아니고는

너를 다른 무엇으로 바꾸어 불러서는, 네가 원할 때조차

옳지 않기 때문이다.


“조선의 4번 타자”는 명예로운 호칭이나

야구선수로서 그에게 바치는 것일 때 그러하고

완전한 개인, 자연한 이대호에게는 늘 부족하고

부당하며, 신비하기까지 한 그를 납작하게 눌러 가두고, 가지고 노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다정한 사회에서

친절한 사람이 되려 할 때

나는

무심코 해 온 많은 말과 행동을, 생각을

당장 멈추고 기각해야 한다.

나는 공적으로는

인격이 아닌 사태를 다루어 단순화하고 논점을 압축할 수 있지만

사적으로는 인격을 대하여

그의 동의 없이는

농담으로라도

칭찬으로라도

그를 그 아닌 무엇으로도, 아무리 위대한 것으로도

환원하지 않는다.

그래서는 안 된다.


그리고 어떤 일이 거기 해당하는지

어떤 표현이 어느 순간 그만 그렇게 하고 마는 것인지

계속해서 공부한다.

저지르고도 배우고

다행히 저지르지 않고 배우기도 한다.

고맙게도 남들이 일러주기도 하고

충격적으로 고맙게도 그들은 너그러이 내가 고치고 달라진 사람으로서

관계를 이어갈 기회를 남겨 두기도 한다.


신비롭게도

사람들은

잘못한 사람들을 구분한다, 저절로 안다.

뉘우치는 사람과

뉘우치지 않는 사람

고치려고 하면서 못 고쳐 괴로워하는 사람

아무런 괴로움 없이 그냥 말로만 미안하다거나

다른 핑계를 대 반격하는 사람을

기가 막히게 구분한다.


어느 날 그물이 모두를 채 갈 때

어느 편에 서 있을까?

사는 쪽에서 살고 있을까,

죽는 쪽에서 마침 놀고 있을까.


살자.

당신도,

나도.



우리는 다정하자.

묻고,

매번 정확하고 명시적인 동의 없이

차라리 침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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