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한 칸이다
[휴지]
고작 한 칸이다. 고작 한 칸.
어차피 과민성일 뿐 나올 것도 없어 앉아만 있다 일어섰으니까. 그렇지만 찜찜해서 딱 한 칸을 쓰려던 건데, 그가 원하고 정당하게 요구한 건 자리에 없었다. 그는 빈 심지를, 알면서도 한 바퀴 돌려 보았다. 가장자리가 톱니모양인 가느다란 흰 선만이 남아 있었다. 참, 알뜰히도 썼다. 그렇게 다 쓰고 세면대 위 선반에 든 새 휴지는 갈아넣지 않았다.
후세 역사가들은 전부 여기서 시작됐다고 의견을 일치한다. 무려 삼년 동안 벌어진 피와 눈물, 땀과 배고픔이 거기서 발단을 맞았다고. 딱 한 칸만 남았더라면, 심지어 새 휴지를 걸어두었더라면 그의 마음은 평화롭고, 그런 표정을 짓지 않고, 그런 말을 뱉지 않고, 그런 결정을 내리지 않았을 거라고. 이설이 있지만 대부분 직전 사용자를 강남이라고 보고 있다. 그는 인류 절멸의 원흉으로 꼽힌다.
제시어: 휴지
제한: 5분, 손으로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