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부와 함께 | 기적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 드리는 찬미 묵상(2)

by 이제월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 드리는 찬미(일부)*


1“당신은 기적을 일으키시는”

거룩하시고 유일하신 주 “하느님이시나이다”(시편 76,15).





✣ 묵상 ✣

레오 형제에게 준 친필 기도문 중 하나인 이 기도의 이름은

(다른 하나는 ‘레오 형제에게 준 축복’이다.)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 드리는 찬미[이하 「하느님 찬미」(LaudDei)].

기도는 “당신”이

“기적을 일으키시는” 분이라고,

“거룩하시고 유일하신 주 ‘하느님이시다’”라고 외친다.

거룩하다, 유일하다.

그리고 그이는 ‘기적을 일으키는’ 이이다.

이 첫 마디가 기도를 이끈다.

그 유일함과 거룩함이 나머지 전부를 이끄는 것이다.

물론 온전하게 하나인 그 어디서 잡고 끌어도

나머지 전부가 따라온다.

그래도 처음은 있는 것이다.


“기적을 일으키시는” 분.

“기적”은 무엇일까.


내가 바라는 기적은 무엇일까 생각한다.

기적이라도 바라는 때가 없던 것은 아니지만

단순한 소원과 기적의 차이는 무엇일까?

아무 노력 없이 얻기를 바라는가?

요컨대 다른 누군가의 노력은 부정당하고

노력 없이 나는 무언가 얻기를 바란다면 기적은 얼마나 부당한가.

아니면 자연법칙에 어긋나거나

상례를 벗어나는 것이 기적이라면

그것은 또 얼마나 두렵고 나쁜 일이지 않은가.


그런 기적을 바란 적 없다.

멋모르는 철부지의 공상 속에서라면 모를까.

바라는 건, 기적일 때,

마땅히 일어나 좋고, 일어나는 것이 자연스러우나

우연과 작위가 가로막은 것

그것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그것은 과연 기적이라는 ‘결과’를 바라는 것일까.

가로막는 우리의 그릇된 생각과 말과 행동을

우리의 그릇된 방식을 발견하고 고치기를 바라는 것, 그러니까

‘과정’이 바뀌기를 또는 더 일찍

‘마음’이 바뀌기를 바라는 것일까.

마음이 바뀌면 사람이 바뀌는 것인가, 그러니까 사람을 고쳐 보자는 무리한 심보인 걸까?

아니면, 마음을 바꾸니까

사람이 변하니까

비로소 ‘기적’인 건가.


하나는 분명하다고 기대한다.

기도는

기도하는 이만큼은

바꾼다. 틀림없이.


믿나이다.

나는 굳게 믿는다.






프란치스코의 글 출처: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엮음, 『아씨시 프란치스코와 클라라의 글』, 프란치스코출판사 펴냄, 2014년, 1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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