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 물거품 같이 읽기-서른세 번째날(7)

일곱 번 나는 내 영혼을

by 이제월


출판된 본문⟫ n.33

일곱 번, 나는 내 영혼을 경멸하였습니다.


(중략)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의 영혼이 아부의 노래를 부르고

그것을 덕이라 여길 때입니다.



원문⟫

Seven times have I despised my soul:

(.....)

And the seventh time when she sang a song of praise, and deemed it a virtue.


새로 한 번역⟫

나는 일곱 번 내 영혼을 경멸하였습니다

(.....)

일곱 번째로 내 영혼을 경멸한 때는 영혼이 찬가를 바쳐 부르면서 그게 덕이라고 여길 때였습니다.


읽기글-7》

아부의 노래와 덕 사이.

타인에 대한 친절함이나 용서의 몸짓,

위로의 말이나 여타 숭고해 보이는 모든 것.

그것들조차 내가 진정한 사랑에서 우러나와 하는 것이 아니면

그것은 덕이 아닙니다.

어떤 것에 대한

-그것이 현세적 가치이든

정신적이고 고양된 가치이든!-




내가 진실하게 사랑하지 않는 것에 대해

근접성을 묘사하는 것은

마치 불붙지 않은 채

빛을 내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일이며,

영혼에 있어서는 마지막까지 경멸받을 일입니다.




지브란은 사회적인 아부를 말하는 것도 같지만

동시에 마음이 행하는 모든 '잘 보이려는 짓'에 대한

경책으로 들어봅시다.


****

일곱 번 경멸한 것들 중 가장 중요하고 놀라운 것이 일곱 번째 경멸한 사건입니다.

지브란이 밝히는 사유는 찬가를 불러 놓고는 그것 -찬가를 부르는 것- 을 덕이라고 여겼다는 것입니다.

찬가를 부르는 것이 꼭 나쁜 일일까요? 빈정대는 투로서 찬가는 아부하는 것을 가리킬 수 있지만

지브란이 뜻한 바가 그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보다는 찬가를 부르는 것은 찬양받는 대상과 나 사이의 분리, 떨어진 거리를 드러내는 것인데

그 찬양 속에 부끄럽고 겸손하고 마음을 다잡는 대신

덕과 분리된 그 상태를 덕이라 여기는 것 자체가

영혼의 마땅한 길, 제 본래의 명(命)에 어긋나는 것이어서 부끄럽고, 책망 받고,

나아가 경멸당하는 것이 차라리 명예를 지키는 일이 되는 것이 아닐까요?



****

이 모든 경멸에 대해 지브란이

그저 어떤 영혼을 경멸한다고 말하지 않고

영혼이 어떠할 때 경멸한다고 말했음을 주목하십시오.

그는 일곱가지 영혼을 경멸한 것이 아니라

일곱 번 경멸했다고 말하였습니다.




하나의 영혼은 고결하기도 하고 실수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것은 존경과 사랑

경멸과 꾸짖음을 한 몸에 받습니다.

당신의 영혼이 그러합니다.

당신은 칭찬받을 때도

비판받을 때도

그것을 '나'라고 여겨서는 안됩니다.

단지 당신은 그 어느 '때' 긍정 또는 부정의 시선을 받은 것뿐입니다.




우리는 영혼 자신을 지속적으로

경멸할 수도, 숭배할 수도 없습니다.

그랬다가는 바로 나락에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존경받던 바로 그것이 이제 멸시받는 그것이고

천대받던 바로 그것이 고결한 지금 이것입니다.




영혼이 무엇을 하든

당신은 경멸하길 주저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계속해서 경멸하지는 마십시오.

눌러두지 않는다면 그는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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