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눈이 멀고
출판된 본문⟫ n.34
그대는 눈이 멀고,
나는 귀머거리 벙어리입니다.
그러나
우리 서로 손을 잡고
서로를 이해합시다.
원문⟫
You are blind and I am deaf and dumb, so let us touch hands and understand.
새로 한 번역⟫
그대는 눈 멀고 나는 귀머거리에 벙어리입니다
그러니 우리 손을 마주 대고 이해해 봅시다
읽기글-1⟫
출판된 번역과 다르게 '그러나'를 '그러니'로 바꾸어 옮겼습니다.
연대의 이유에 대해
칼릴 지브란은 우리가 미완성 내지는
모자란 채로 채워진 존재라는 점을 내비칩니다.
네, 저 역시 연대의 이유, 공존의 이유를 고민합니다.
님들 또한 이러한 물음들과 그에 대한 나름의 답을 마련하느라
뒤척인 적이 있으시겠지요.
지브란은 저 장애를 진 존재들이
얼마나 서로를 경계하고 다가서지 못하는 지를 알기에
‘그러나’라며 다독입니다만
이치만 따진다면 그것은 '그러니'라야 합니다.
인간은 미래를 알지 못합니다.
그것은 지상의 모든 존재 또한 그렇습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다지만, 또한 통상적인 '개연성'을 추측할 수 있다지만
우리에게 미래는 늘 더 큰, 우리가 지어놓은 울타리 바깥의 가능성들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많은 경우 두려움이지요.
모든 종(種)이 스스로의 번식이나 존속을 위해 본능을 따릅니다.
인간은 그러한 본능은 없습니다.
동종간에 그러한 증오를 간직한 족속은 없습니다.
대신에 인간에게는 인간애가 있지요.
그러나 유한한 재화 속에서 인간애는 심각한 도전을 받곤 합니다.
우리가 우리보다 약자에게, 병든 이나 노인, 아이에게 배려해주는 건 무엇 때문인가요?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그들에게 준 것이 돌아온다는 보장은 없다는 것입니다.
대신 우리는 다른 전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주었으나 준 것이 아니라는 것.
왜냐하면 애초부터 둘이 아닌 하나였으니까.
벙어리와 귀머거리가 따로 있는 것이 현상(顯象)이지만
벙어리와 귀머거리가 같이 있어 서로를 온전하게 하는 것이 본질(本質)이라면
그것이 진면목(眞面目)이라면.
지나친 비약입니까?
읽기글-2⟫
그대와 내가 하는 일은 서로를 이해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그렇게 서로를 얼싸안고 거짓 기쁨을 누리느라
세계를 닫아 버려서는 안 됩니다.
그대는 내게, 나는 그대에게 감옥이 되고 맙니다.
대신 우리는 무엇을 이해합니까.
우리가 이해하는 것은 언제나
에오라지 세계입니다.
당신은 눈 멀고
나는 귀 먹은 데다 벙어리지만
우리가 함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삶에 내린 축복이고 신비입니다.
세계를 이해하는 자들의 연대는 아름답고
저희끼리 이해하는 자들의 연대는 고인 물처럼 썩고 맙니다.
그 부패의 열기에 휩싸여
따뜻하다는 착각에 빠지지 않도록
그대도
나도
깨어 있기를 바랍니다.
깨어 있기는
장님에게도 벙어리에게도 귀머거리에게도 똑같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사람됨이지 않습니까?
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