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부와 함께 | 평화의 사람의 지행합일(知行合一)

권고들 5. 아무도 교만하지 말고. 묵상

by 이제월



권고들


[5. 아무도 교만하지 말고, 주님의 십자가를 자랑할 것입니다]


1오, 사람이여, 주 하느님께서 육신으로는 사랑하시는 당신 아들의 “모습대로”, 그리고 영(靈)으로는 당신과 “비슷하게” 그대를 창조하시고 지어 내셨으니(참조: 창세 1,26), 주 하느님께서 그대를 얼마나 높이셨는지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2그런데 하늘 아래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은 나름대로 자신의 창조주를 그대보다 더 잘 섬기고 인식하고 순종합니다. 3뿐만 아니라 마귀들이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 아니라, 바로 그대가 마귀들과 함께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았으며, 그대는 아직도 악습과 죄를 즐기면서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고 있습니다. 4그러니 그대는 무엇을 자랑할 수 있겠습니까? 5실상 그대가 “모든 지식”을 가지고 있고(참조: 1코린 13,2), “모든 언어”를(참조: 1코린 12,28) 해석할 수도 있고, 또 천상 일을 날카롭게 꿰뚫어 볼 정도로 예리하고 명석하다 할지라도, 그대는 이 모든 것을 자랑할 수 없습니다. 6왜냐하면 주님으로부터 가장 높은 지혜에 대한 특별한 인식을 받은 사람이 있다 해도, 한 마리의 마귀는 그 모든 사람보다 천상 일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었고, 지금은 지상 일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7이와 마찬가지로 그대가 모든 사람보다 더 잘생겼고 더 부유하고, 또한 기적들을 행하여 악령들이 달아난다 해도, 이 모든 것은 그대에게 해(害)가 되고 그대의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이 모든 것 안에서 아무것도 그대는 자랑할 수 없습니다. 8오히려 우리는 이 안에서 우리의 “연약함”과(참조: 2코린 1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십자가를 매일 지는”(참조: 루카 14,27; 갈라 6,14) 일을 자랑할 수 있습니다.



✣ 묵상 ✣



소크라테스는 지행합일설(知行合一說)을 주장하였는데, 지금

프란치스코도 지행합일설을 주장한다.

“인식하고-순종합니다”(2절).


소크라테스의 지와 프란치스코의 지는 다르다.

소크라테스는 사물과 대면하여 ‘일’[事]과 ‘몬’[物]을

생긴 대로 보는 데서

지를 형성하며(이루며)

이로써 사물에 대한 재량, 통제권을 가져

알맞게 즉, 유효하게 쓰는 것이

지에 합하는 ‘행’이라고 보고 있다.

이만 해도 경탄할 만한 식견이다.


프란치스코는 사물을 꿰뚫고 지나가 버린다.

거기 걸리지 않고 갇히지 않고 지나쳐 가 ‘주 하느님’을 대면한다.

이로써 신적 의지, 섭리(攝理)를 보는 것이

인식이요, 자족할 지에 이른다(든다).

이로써 사람은

마음 놓고 통제력을 내려놓고

기꺼이 순종한다. 기쁘게 인내한다.

이 “연약함”(2코린 12,5; 「권고들」 5, 8에서 재인용)만이

신의(神意, volutas tua, 당신의 뜻)를 거스르고 훼방치 않는다.


순종함으로써 이 평화의 사람은

안다면 갈망할 바를, 바로 그것을 이룬다.

갖은 고초나 고행, 순례가 그에게는 쉬운 일. 거저 얻는 듯 기쁘다.

영웅적인 안식이 된다. 지금

“쓴맛이었던 바로 그것이 도리어 몸과 마음의 단맛으로 변”하니 말이다(「유언」 3절).





*프란치스코의 글 출처: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엮음, 『아씨시 프란치스코와 클라라의 글』, 프란치스코출판사 펴냄, 2014년, 27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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