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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월 Oct 26. 2023

천상의 난민들

서랍 속의 글

<천상의 난민들>

— 서랍 속의 글



뮤즈들이 회의를 연 사연은 이렇다. 그 결의는 우리에게 대단히 큰 영향을 미쳤던 바 이 사건은 기록하고 열람할 가치가 크다.


애초에 시인들은 뮤즈들의 사인을 잘 듣고 잘 읽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충실한 학생이었기에 세상 어디서나 ‘흔적’을 찾았고, ‘목소리’를 들었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그러나 확신에 차서 썼고, 노래했다. 그리고 덧붙여 말하기를 잊지 않았다. “뮤즈가 들려준 것이오”.


시대가 흘러 뮤즈들에게서 흘러나온 것들이 강과 바람처럼 세상을 덮고 흘렀다. 지상의 때가 묻기도 했지만 이런 것들을 모아서 형태를 바꾼 이 시대의 사람들은 스스로를 ‘작가’라 불렀다. 더 이상 시인, 그러니까 천상과 지상의 중개자인 것이 아니라 천상이 필요없는, 지상에서 창조하는 자로 자처하였다. 뮤즈들은 아연실색했지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더 커다란 영감을 선물해 이들의 꿈이 커지고 커져 마침내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서 깨닫기를 바랐다.


시대가 더 흘러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 사람들은 뮤즈의 영향 대신 선배들의 영향을 손꼽았다. 지상 사물과 사건들, 과거의 경험과 집단 혹은 개인의 기억들을 샅샅이 훑어 거기서 제 말들의 뿌리를 찾으려 했다. 찾을 수 있을 리 없다. 이곳은 뿌리가 아니라 가지요 잎사귀 꽃 그리고 떨어진 열매니까.

사람들은 말했다. 셰익스피어의 문체며 플라톤식 구성이며 공자와 같은 태도며....

뮤즈들은 이 거대한 도둑질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지 회의를 열었다.

마침내 어떤 도움도 결국 도움이 될리 없고, 저들은 점점 더 멀리 달아날 거라고 생각했다. 뜻을 모은 뮤즈들은 점차 높은 산의 희박한 공기 속으로* 혹은 아예 진공 속으로 날아갔다. 그들은 본래 중력에 구속되지 않지만 이제 스스로 공기도 음파도 중력도 희미한 침묵 속으로 스스로 옮겨 갔다. 그들은 조만간 새로운 별에서 새로운 종과 조우할지 아니면 개나 고양이와 같은 지구상 다른 종과 접촉할지 숙려하고 있다.


뮤즈들이 떠나자 이제 사람들은 사건을 기술하거나 과거의 문장을 반복하거나 교묘하게 혹은 뻔뻔하게 비트는 것말고는 어떤 문장도 완성할 수 없게 됐다. 사람들은 극한의 체험을 원했다. 때로는 사건 속으로 때로는 고독 속으로. 그리고 희소하나마 높은 산이나 사막에서 뮤즈와 마주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뮤즈는 전처럼 이야기하지 않았고 그저 혼잣말이나 하고 지나갔다.

하지만 그 한 마디로도 벼락을 맞은 듯 감전된 정신은 희대의 지성이며 영감덩어리, 거대한 감정의 폭풍으로 여겨졌다.

그렇게 우리 시대는 점점 궁핍해져갔다.


감사를 잊은 우리. 답을 모를 때 답을 찾는 대신 서둘러 아무거나 만만한 것을 - 숲은 결코 자신이 영감의 원천이 아니라고 강변하지 않는다 - 답이라 지명하고 우겨댔다.


우리는 문장을 잃어가고 있다.

다른 별들의 전례를 살필 때 문장을 잃은 자들은 미구에 단어도 잃는다.

마침내 모든 의미가 너무 오래된 우주처럼 빛을 잃고 꺼져간다.

우리는 이야기를 잃었다. 더는 신화가 태어나지 않고, 걸어다니지 않는다. 그렇지만 소리를, 울림을, 한 순간의 충동이라도 다시 뛴다면 혹시 말들이, 혹시 문장들이 되살아나고 마침내 인간세* 두 번째로 이야기들의 시대를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그 시절을 거의 다 보냈다.

60년 뒤의 나는 정확히 그렇다고 말해 주었다.

거의. 그다음은 어땠는지는, 나는 말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는 표정없이 창밖을 건너다 보았다. 흔들리는 천 너머로 비가 오고 있었다.

노바이 스붐베(nobai sbumve). 결코 끝나지 않을 비라고 알고 있다.


지금도 머리 위에 뮤즈들이 떠돌고 있다. 까마득히 멀어

북미 평원 원주민들의 시력이라도 알아볼 리 없겠지만

나는 고대의 습관대로 새로운 생각을 끌어 올 때면

조금 위를 올려다본다.


(2015-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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